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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어떤 이산(離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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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어떤 이산(離散)

입력
2006.12.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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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든 유럽에서든 '예술'(그리스어 '테크네', 라틴어 '아르스')은 본디 자연에 반하는 인위적 기술을 가리켰다. 근대 이후 주로 조형예술을 가리켜온 '미적 기술'(미술ㆍ영어 '파인 아츠', 프랑스어 '보자르')이라는 말이나 오늘날 한자어권에서 예술가의 은유로 쓰이는 '장인(匠人)'이라는 말에도 이런 '기능'이나 '기법'의 의미가 담겼다.

기술은 예술의 고갱이이자 정신이다. 예술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소재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그 소재를 주무르는 예술가의 솜씨가 뛰어나서다.

● 재일동포 감독의 감동적 다큐멘터리

그러나 어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솜씨에 기대지 않고도 오로지 소재의 힘만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 이 그렇다. 자신이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이 작품에 양영희씨는 별다른 예술적(인위적) 배려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투박한 작품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디어 평양> 의 소재 자체가 공동체적 기억의 현(絃)을 극적으로 켜는 서정과 서사의 활이기 때문이다. <디어 평양> 은 무력하지만 순수한 삶을 살아온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다.

그 아버지 개인의 이야기는 그가 책임지고자 했으나 책임지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고, 그 가족이 얽혀 들어간 민족의 이야기다. 그것은 소위 '자이니치(在日)'의 이야기지만, 더 보편적인 '디아스포라'(이산) 이야기이기도 하고, 역사와 개인의 불화 또는 화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디어 평양> 이 엿보는 공간은 오사카(大阪)와 니가타(新潟)와 원산과 평양을 잇는 길이다. 그 여로는 양영희씨의 유년기에 홍안의 세 오빠가 아버지의 권유로 택했던 '귀국(歸國)'의 길이고, 남은 가족이 긴 세월 뒤 오빠를, 자식을 보기 위해 답습하는 '방문'의 길이다. 만경봉호의 편도표를 끊어 동해를 건넌 오빠들에게, 그 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제주도 출신의 조총련 활동가였던 아버지는 세 아들이 일본인들의 차별 속에서 사느니 '조국의 품'에서 당당히 살아가길 바랐다. 그에게 조국은 해방 뒤 일본에 남겨진 동포들을 살갑게 보살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하나뿐이었고, 북의 지도자에 대한 충성은 첫째가는 의무이며 도리였다. 그는 평양에 들러 왠지 어두운 아들들의 얼굴을 보고도, 자신의 신념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념을 한사코 거부해온 딸이 한국 국적을 얻는 걸 마침내 허락하게 되고, 그 딸의 집요한 질문에 못 이겨, 세 아들을 '귀국'시키기로 한 수십년 전 결정에 대한 후회를 슬쩍 내비친다.

<디어 평양> 이 초점을 맞추는 이는 아버지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저릿한 캐릭터는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총련 활동에 전념하느라 돈벌이를 작파한 아버지를 대신해 살림을 꾸린 어머니이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들들을 '귀국'시킨 뒤엔 남편과 함께 총련 활동의 일선에 나선 어머니이며, 자식들의 살림살이 실상을 안 뒤로는 평양에 일용품을 보내기 위해 발이 닳도록 우체국을 오가는 어머니다.

● 이념ㆍ체제 아닌 공동체ㆍ역사의 기억

<디어 평양> 의 '디어'는 '디어 리더'(경애하는 지도자)의 '디어'가 아니다. 평양 초행길에 그 도시를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수도"라고 소개하는 안내원의 말을 듣고, 양영희씨는 속으로 도리질한다.

그에게 평양은 혁명의 수도가 아니라 그저 그리운 가족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가족이 사는 곳이기에, 그 가족을 보자면 그리 가야 하기에, 양영희씨에게 평양은 '디어 평양'이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북 체제에 대한 타박에도 불구하고, <디어 평양> 의 '디어'에는 조금의 비아냥거림도 없다. '북 체제에 대한 타박'이라고? 이 말은 거두는 것이 좋겠다. 양영희 감독의 잔잔한 논고가 향하는 곳은 어떤 이념이나 체제라기보다 역사이기 때문이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 (2004) 이후 오랜만에 좋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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