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KT&G 지분 대량 매입을 공시하며 경영권 분쟁을 촉발했던 미국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주식 대부분을 팔고 KT&G에서 손을 뗐다. 아이칸은 10개월간의 투자로 배당금과 차익을 포함해 1,500억원 가량을 챙겼다.
겉으로는 기업투명성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주창하며 경영권을 위협해 주가를 높인 뒤 결국 단기 차익만 챙겨 떠나는 외국계 투기성 자금의 속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버린과 론스타 등 그동안 국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외국투기 자본의 전형을 답습한 셈이다.
5일 매각주관사인 씨티글로벌마켓증권에 따르면 칼 아이칸은 이날 개장 전 시간외 대량매매를 통해 KT&G 주식 700만주(4.75%) 가량을 총 4,225억원 가량에 팔았다. 매수자는 외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28일부터 올해 1월9일까지 칼 아이칸이 KT&G 주식 776만주를 사들이는데 3,351억원 가량을 투자한 점을 감안하면 이날 매각으로 874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이미 팔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70~80만주로도 약 484억원의 차익을 챙긴 것으로 보이며, 주식 배당금 124억원(주당 1,700원)까지 더하면 칼 아이칸이 KT&G에 10개월간 투자해 얻은 이익은 1,482억원에 달한다. 수익률은 44.22%. 여기에 원ㆍ달러 환율 급락에 따른 환차익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굿모닝신한증권 박동명 애널리스트는"주주가치 제고 등을 내세우며 경영권을 압박했지만, 단기 차익 목적으로 들어온 초단기 펀드임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아이칸은 주주배당확대, 인삼공사 상장, 부동산 매각 등 KT&G 경영진에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경영을 하도록 압박해왔다.
단기 이익실현을 높여 주가를 띄우고 차익을 챙기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총수에게 지배권이 집중된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등의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이는 단지 차익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KT&G의 경영권 분쟁 이슈가 사라지고 아이칸이 매각한 물량이 대거 시장에 나옴에 따라 KT&G 주가가 약세를 보일 수 있지만, 경영위협 부담이 없어서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아이칸과 연합해 올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인 워렌 리히텐슈타인을 KT&G 사외이사로 입성시킨 스틸파트너스는 여전히 3% 가량의 KT&G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스틸파트너스 측은 "우리는 단기 펀드가 아니며 최소한 3~4년 가량 투자하는 중장기 펀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이칸의 KT&G 지분 매각 등으로 외국인 주주 결집이 어려워져 향후 주총 등에서 더 이상의 경영권 공격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스틸파트너스는 지난 8월 아이칸과 결별을 선언했으며, 리히텐슈타인은 8월 KT&G가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이후 KT&G 이사회에 불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KT&G 관계자는 "리히텐슈타인은 서신과 화상회의 등을 통해 경영진과 의사소통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은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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