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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라운드를 포기하고 싶은 대통령

입력
2006.12.0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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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노무현 대통령이 골프 연습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두어 명의 경호원이 따라 붙었으나 대통령은 연습장의 다른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준비를 했다. 경호원들 역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대통령을 알아본 사람들이 목례를 하자 대통령도 목례로 답했다. 넥타이만 풀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타석에 들어선 대통령은 처음부터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깔끔하다고 할 스윙은 아니었으나 힘이 있었고 비거리도 꽤 길었다.

● 골프하듯 국가경영을 했다면

권양숙 여사는 상당한 골프애호가로, 실력도 싱글 수준으로 소문났지만 노 대통령은 핸디캡이 20이 넘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공을 멀리 보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대통령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인생 자체보다 더 인생답다'(데이비드 누난)는 골프를 노 대통령은 어떤 자세로 대할까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대통령이 골프를 하듯 국가경영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보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는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지만 몇 개월이라도 골프채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골프가 인생의 축도임을 깨닫게 된다. 골프를 하면서 겪는 상황과 교훈에 조금만 유의한다면 대통령의 통치행위야말로 골프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골프의 첫 홀은 바로 국가경영의 시작이다. 첫 홀의 티샷은 그 날의 골프를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기록을 내겠다거나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첫 홀부터 실패하면 어쩌나 불안해 하면 영락없이 티샷에 실패하기 마련이다.

대통령 역시 취임과 동시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거나, 아무도 자신을 호락호락하게 대하지 못하게 위엄을 부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순리를 좇는 국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히 첫 홀을 무사히 넘겼다고 해도 방심하면 금방 미스 샷이 나오듯, 대통령 역시 출발이 좋았다고 해서 대통령직 수행이 별것 아니라거나 나 정도면 국민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식의 자만과 방심에 빠지면 실정을 자초하기 쉽다.

여러 홀을 순조롭게 지나는 것도 위험하듯 국가경영에서도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 태평스러울 때가 가장 위험하다. '골프에서 방심이 생기는 가장 위험한 시간은 바로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때다'라고 한 진 사라센의 경구는 국가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밖에도 가장 무서운 적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동반자를 최대한 배려하면서 규칙을 준수하는 것 역시 골프와 국가경영의 공통점들이다.

마지막 홀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듯,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아무리 스코어가 나빠도 동반자들에게 피해를 안 주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박수를 받지만 동반자들과 다투며 화가 나서 18홀을 떠난다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골퍼로 낙인 찍힌다.

대통령 역시 임기 중 실수도 하고 원성을 샀지만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한다면 국민들이 원망을 삭이고 대통령에게 위로의 눈길을 줄 수 있지만 끝까지 분란만 일으킨다면 사정은 다르다.

● 성적 나빠도 라운드는 마쳐야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 탈당설과 하야설이 난무한다. 지금 노 대통령의 심정은 골프채를 내던지고 골프장을 떠나고 싶은 골퍼처럼 보인다.

잘 해보자고 다짐한 라운드가 마음대로 안 되듯, 노 대통령은 비상한 각오와 열정으로 국가경영에 나섰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미스 샷을 연발했고 자주 OB지역이나 해저드로 공을 날리고 멀리건도 꽤 받았다.

동반자들(여당 야당 정부)과는 늘 티격태격했고 결정적으로 캐디(청와대 참모진)를 잘못 둔 데다 캐디의 서툰 충고마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갤러리(국민)들의 짜증은 당연했다.

이제 노 대통령에게 남은 홀은 많지 않다.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고 라운드를 중도 포기하는 것은 골퍼의 매너가 아니다. 그 동안 라운드가 깨질 위기가 많았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다른 동반자들 역시 골퍼로서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동반자들이 말썽꾸러기 골퍼의 홀 아웃을 돕듯, 우리 모두 노 대통령이 조용히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관용과 배려를 베풀면 어떨까.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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