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비·임수정 "우리요? 감독님이 독한 애늙은이래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비·임수정 "우리요? 감독님이 독한 애늙은이래요"

입력
2006.12.05 23:49
0 0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여자 영군(임수정)은 밥 대신 건전지 충전으로 끼니를 때우고 사람 대신 기계를 가까이 한다. 그에게 정신병원 복도 형광등은 무뚝뚝한 동료이고, 음료수 자판기는 붙임성 좋은 친구다. 이유 없이 남의 것을 닥치는 대로 훔치는 남자 일순(비)도 정상은 아니다. 남의 행동과 마음을 훔칠 수 있다고 믿으며 초조할 때마다 이가 닳도록 양치를 한다.

7일 개봉하는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의 주인공은 일명 ‘사이코’인 비정상적 인물이다. 잘 나가는 배우라면 선뜻 맡고 싶지 않을 역할이다. 그러나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힌 비와 청순함을 품어내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임수정은 엉뚱하고도 발랄한 사랑이야기를 조합하는 두 남녀 정신병자를 큰 망설임 없이 택했다.

특히 비는 거리낌이 없었다. “하고픈 영화가 이미 있었지만 박찬욱 감독 작품이기에” 일순이 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레 여배우가 교체되면서 촬영 직전 출연 제의를 받은 임수정은 짧은 고민을 거쳤다. “이런 독특하고 창조적인 작품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머뭇거림 뒤에 “한번 도전 해보자”며 “기회를 덥석 잡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엉덩이 사이에 끼인 바지를 손으로 빼내는 연기나 틀니를 끼고 우물거리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낸다.

서로를 “대단한 프로페셔널”이라고 추켜세우기 바쁜 두 사람의 호흡은 당연히 좋았다. 박 감독이 “그만하면 됐다”고 말려도 두 사람은 스스로 마음에 들 때까지 최상의 연기를 찾았다. “감독님이 ‘너랑 수정이는 너무 독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저희 나이면 자기 일 책임 지고 할 나이’라고 말했더니 ‘둘 다 애늙은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비) “독한 것들 둘이 만나서 (연기를) 한다고 하셨는데, 알고 보면 감독님도 독하세요.”(임수정) “셋 다 똑같아요. 그래서 죽이 잘 맞은 듯해요. 영화 찍으면서 정말 걸림돌 하나 없었어요.”(비)

비는 힘들고 아쉬웠던 점으로 “공연 일정 때문에 촬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술자리를 많이 갖지 못한 것” 정도를 꼽았다. 첫 영화라는 부담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와 배우 겸업에 대한 일부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은 짐이었다. “‘네가 다 해먹어라’라는 지적이 있는 듯해요. 저는 단순히 이력 쌓고 돈 벌려고 연기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하고싶어서 할뿐이에요. 돈 생각하면 연기할 시간에 해외에서 공연 한 번 더 하는 게 나아요.”

임수정의 촬영 중 고생담은 비보다는 눈물겹다. 그는 밥을 먹지 못한 영군의 비쩍 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 몸무게 5㎏을 빼야 했다. “촬영 마치고 스태프, 배우들과 어울려 밥 한번, 술 한잔 제대로 못했어요. 숙소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물로 배고픔을 달래야 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싸이보그지만…>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일과 놀이로 엇갈린다. 비는 15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12개국을 도는 월드 투어에 전념할 계획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두고 싶어요. 내년에는 큰 시장(미국)에 가서 승부수를 한번 던져야죠.” 최근 허진호 감독의 <행복> 촬영을 마친 임수정은 당분간 푹 쉴 생각이다. “예전의 저답지 않게 올 한 해 동안 찍은 영화가 <각설탕> 을 포함해 세 편이에요. 이젠 좀 휴식을 갖고 완급 조절을 하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라는 제목의 의미는 ‘싸이보그지만’과 ‘괜찮아’ 사이에 ‘사랑해도’ 또는 ‘밥 먹어도’가 들어가야 좀 더 명확해진다. 자신이 사이보그라는 망상 때문에 식음을 전폐한 영군(임수정)에게 밥을 먹이려는 일순의 눈물겨운 사랑이 스크린 대부분을 채우기 때문이다.

<싸이보그지만…> 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러브스토리임에도 삼각관계는 존재치 않는다. 신분의 차이나 부모의 반대조차 없다. 사랑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애절함과 절실함을 심어줄 갈등의 요소가 없는 것이다. 두 남녀 사이를 가르는 걸림돌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정도다. 여자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고 남자는 반사회적 경향을 지닌 강박장애 환자다. 아무리 각기 다른 증세를 지닌 정신병자 사이라지만 상대방에게 동정심을 갖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줄거리는 평이하다.

그래서일까. 박찬욱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행동과 재치 넘치는 상황 설정에 주력하며 관객을 유혹한다. 박 감독은 “사랑과 웃음이 섞여 있어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하지만 <싸이보그지만…> 은 판타지 멜로에 가깝다.

<싸이보그지만…> 은 여러모로 한국영화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HD 카메라의 몸을 빌어 구현된 화사한 색감, 귓가에 오래도록 공명을 남기는 음악, 정신병원을 유치원처럼 꾸며낸 미술, 개성 넘치는 환자복을 만들어낸 의상 등 눈과 귀를 매혹시키는 ‘세공술’의 조화가 빼어나다. 사랑과 소통이라는 닳고 닳은 주제를 상투어구를 동원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언어로 전달하는 연출력도 높이 살만하다.

‘박찬욱 마니아’라면 충분히 환호하겠지만 보편적인 웃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딸 아이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박 감독의 의욕은 그저 욕심에 그친 게 아닌가 생각이 들만큼 <싸이보그지만…> 은 다소 불친절하다. 12세.

라제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