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나희덕이 금강산에서 찍은 사진을 우편으로 보냈다. 안 찍히느라 안 찍혔는데도 여섯 장이나 된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곧 '이렇게나!'가 되도록 나는 내 얼굴의 추함에 압도당했다.
단 한 장도 예외 없이, 피곤하고 짜증에 겨운 못난 얼굴이 억지로 웃는 듯 울상인데다 아, 그 적나라한 늙음! 디지털 현상을 하고 봉투에 사진을 담고 주소를 쓰고 우체통에 넣느라 애쓴 나희덕한테는 미안했지만, 즉시 그 사진들을 찢어버렸다. 내 다시는 다시는 사진 찍히지 않으리.
그런데 나만 사진을 없애면 단가? 아니다! 사진에 등장한 다른 인물 숫자만큼의 사진이 세상에 존재할 터. 진솔한 성품의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나왔건 기념으로 추억으로 사진을 간직할 게다.
더욱이 내게 불리하게도 그 사진들 속의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게 잘 나왔다. 두 장의 독사진을 뺀 나머지 사진들에 누가 있었더라? 대략 다섯 명이다. 그들의 집을 차례차례 방문하자.
그리고 앨범을 보여 달래자. 주방에는 앉지 말자. 그래야 커피나 차를 만들러 주인이 자리를 비울 때 잽싸게 사진을 뺄 수 있지. 선배 후배 제위여, 사진이 몇 장 안 보여도 너무 찾진 마시라.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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