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인 영화 ‘로키’의 마지막 장면. 헤비급 챔피언과의 맞대결에서 15회 혈투를 벌인 끝에 판정패한 로키는 피투성이가 된 채 오로지 ‘연인’ 애드리안의 이름을 부른다. 몰려드는 취재진의 카메라를 밀쳐낸 로키는 애드리안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 "다음 목표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유도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한 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5ㆍ한국마사회)는 카타르 도하에서 ‘로키’가 됐다. 그의 ‘애드리안’은 아버지 이상태(61)씨, 어머니 이상옥(54)씨, 그리고 누나 이현주(26)씨였다.
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73kg급 결승이 벌어진 5일(한국시간) 새벽 도하의 카타르 스포츠클럽 유도장. 경기 시작 1분33초 만에 일본의 다카마쓰 마사히로를 뒷당겨치기로 쓰러뜨려 한 판승을 거둔 이원희는 방송 카메라를 헤치고, 성큼성큼 관중석으로 뛰어 올라갔다.
어머니를 번쩍 안아 올린 이원희는 아버지와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로키 세리머니’였다. 전날 61번째 생일을 맞았던 아버지에겐 이보다 더한 선물이 없었다.
이로써 이원희는 2003년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2004년 아테네올림픽 우승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석권해 한국 유도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을 이뤘다. ‘그랜드 슬램’은 이원희의 아버지 이상태씨에게도 해당된다. 이씨는 아들이 ‘그랜드 슬램’을 이룬 4개 대회에서 빠짐없이 현장을 지키며 응원했다.
감동적인 ‘로키 세리머니’는 대회전부터 이원희의 계획 속에 있었다. 이원희는 “평소에 부모님께 잘 표현을 못하는 편이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 꼭 관중석으로 달려가 포옹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랜드슬램’은 부상속에서 일궈낸 성과여서 더욱 값졌다. 이원희는 지난 9월 훈련도중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쳤고, 고질인 오른쪽 발목도 통증을 느끼는 상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원희는 “혹시라도 내가 오만할 까봐 하나님께서 부상을 주신 것 같다. 하나님은 내가 약해졌을 때 강한 힘을 주신다”고 말했다.
이룰 것을 다 이뤘지만 이원희는 자신의 경기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원희는 “이겼지만 불만족스럽다. 미흡했던 점도 많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원희의 다음 목표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것마저 이뤄낸다면 이원희는 한국 유도 사상 첫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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