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으로 따지면 짚신을 신고 축구를 해야 하는 꼴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경기력 보다는 관습이 우선이다.
5일(한국시간) 벌어진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요르단-중국전. 요르단의 골키퍼 미스다 라무니에(23)와 수비수 루바 아다위(22), 수하 엘조게이르(22) 3명의 선수가 히잡을 머리에 쓰고 등장했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쓰는 가리개의 일종이다. 라무니에는 검은색 히잡을, 엘조게이르와 아다위는 흰색 유니폼에 맞춰 하얀색 히잡을 쓰고 나왔다. 이들은 다리도 가리기 위해 유니폼 반바지에 긴 속바지까지 껴입은 차림이었다.
땀을 빨리 배출하고, 근육을 잡아주며, 공기의 저항을 줄이는 등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유니폼에 쏟아 붓는 현대 스포츠과학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차림새.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탁구와 볼링에 출전한 쿠웨이트 여자 선수들이 히잡 차림으로 경기에 출전했지만 상대 선수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축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다위와 엘조게이르는 세계 최강 중국 여자 선수들의 날카로운 크로스에 당황하며 공에 머리를 갖다 대보았지만 그저 시늉뿐이었다. 골키퍼 라무니에도 이리저리 몸을 날려봤지만 돌아온 것은 무려 12실점의 참담한 기록뿐이었다. 더구나 히잡은 시야 확보가 중요한 골키퍼에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제약이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 그들의 출전은 ‘금기의 벽에 도전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알제리의 하시바 불메르카는 조국에 최초의 금메달을 안겼으나 ‘수천명의 외간 남자들에게 다리를 내놓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날 경기 후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축구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 요르단의 이사 알 투르크 감독의 말처럼 이슬람의 여성 스포츠도 조금씩 알에서 깨어나오고 있다.
도하(카타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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