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빛깔을 지닌 도자기는 고려청자라고 도자기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고려청자의 비색은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제조기술은 도공들 사이에서만 비밀스럽게 전수되다보니 후대에는 맥이 끊기고 말았다.
● 고려청자와 베니스 유리공예의 차이
반면 베니스는 15세기부터 특허제도를 정립하여 유리공예 제조기술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였다. 이를 통해 그 제조기술은 지속적으로 전수ㆍ발전되어 베니스는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리세공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베니스의 유리세공제품은 그곳을 찾는 세계 관광객에게 인기상품이 되고 있다.
이처럼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기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식이 경쟁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오늘날 기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최근 연구노트에 대해 새롭게 일고 있는 관심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구노트는 연구내용을 일정 요건에 맞추어 적는 노트로, 최근 여러 국가들이 연구노트의 보급 및 작성 교육에 힘쓰고 있다. 프랑스의 과학기술부와 특허청은 올해 연구기관에 연구노트 작성 가이드라인을 제작ㆍ보급했으며, 영국의 대표적인 지식재산권 라이센싱 기업인 브리티시 테크놀로지 그룹(BTG)은 1996년 제정한 연구노트 가이드라인을 올해 개정, 배포하였다.
연구노트는 이처럼 기술이나 노하우를 축적ㆍ전수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연구성과의 권리화 및 활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연구노트는 발명의 출원일이 아닌 발명일이 특허 획득의 기준이 되는 미국에서 특허 취득이나 외국기업으로의 라이센스 계약시에 진정한 발명자임을 입증하기 위한 주요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단순히 기록만 했다고 하여 연구노트의 증거력을 인정받지는 못한다. 조작 방지를 위해 제본된 묶음노트로 증인란을 두고 정기적으로 서명을 받는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실제 미국 제약사인 애보트는 카이론이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 대항해 카이론의 특허에 대한 무효소송을 냈다가 법원에 제출한 연구노트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패소한 바 있다.
이처럼 연구노트가 지식재산권의 창출 및 활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연구자들의 인식은 미흡한 실정이다. 올 초 한국지식재산연구원과 한국과학재단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연구자들이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있었지만 법적 증거력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인 서명을 받는 경우는 904명의 연구자 중 14.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내 연구계, 기록문화 정착시켜야
그간 우리나라는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고 따라잡기에 급급해 왔기에 연구기록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 연구자들의 연구성과가'네이처''사이언스'등과 같은 저명 과학저널에 게재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시점인 만큼, 연구업적이 국제사회에서 지식재산권으로 원활히 권리화되고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연구기록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올바르고 체계적인 연구노트 기록 문화의 정착, 글로벌 시대의 우리 연구계가 지금 바로 주목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전상우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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