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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9> 바틀렛(Josiah Jed Bart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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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대화] <39> 바틀렛(Josiah Jed Bartlet)

입력
2006.12.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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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드라마 시리즈 <웨스트 윙> 에서의 대통령. 웨스트 윙은 백악관의 서쪽 부분에 날개처럼 붙어 있는 건물로, 달걀 모양의 대통령 집무실과 상황실, 그리고 선임 비서 및 보좌관의 사무실들이 있는 곳이다. 웨스트 윙은 미국 의회 건물과 더불어 연방 차원의 미국 정치가 수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뜨거운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웨스트 윙> 은 워너브라더스 텔리비전사가 제작해 1999년부터 2006년 5월까지 NBC를 통해 전파를 탔다. 이 드라마에는 대통령과 웨스트 윙에 사무실이 있는 인물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는데, 매번의 에피소드마다 얼굴을 내보이는 인물만 해도 열 명 가량이나 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의 주연 배우였던 마틴 쉰이 연기하는 바틀렛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에 가톨릭 신자이며, 의사인 부인과 세 명의 딸이 있다. 드라마에서 설정된 그의 경력 중에 이채로운 것은 그가 원래 경제학자로서 노벨상을 탔다는 것이다. 바틀렛은 뉴햄프셔의 주지사를 지낸 뒤 선거에 나가 승리해서 대통령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불치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숨긴 탓에 첫 번째 임기의 중반 이후에 엄청난 정치적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한다. 극중에서 묘사된 그의 이미지는 아주 이상적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다. 그는 불같이 사납고 열정적이면서도 본디 지적이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며, 가진 것이 없는 서민과 다양한 마이너리티 집단에 대해 근본적인 연민과 공감을 지니고 있다.

그의 여러 가지 업적 중에는 두 차례에 걸친 연방대법원 판사의 성공적인 지명이 있다. 드라마의 시즌 1에서 바틀렛 대통령은 히스패닉 계열의 로버트 멘도자(배우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를 연방 대법관으로, 그리고 시즌 5에서는 여성인 에블린 베이서 랭(배우 글렌 클로스)를 연방 대법원장으로, 또 동시에 골수 보수주의 계열인 크리스토퍼 멀레디(배우 윌리엄 피히트너)를 연방 대법관으로 앉히는데 성공한다.

바틀렛 대통령과 그의 백악관 보좌진들의 진보적, 개혁적 정책 구상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입법 및 예산 획득 과정에서 주로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대에, 또 때로는 소수당이자 여당인 민주당 출신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끊임없이 좌절되거나 수정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웨스트 윙> 의 주인공들은 정치적 파트너 및 경쟁자들의 대화 및 교섭을 통해 대개 적절한 정치적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극중에서 지속되는 이러한 정치적 절충은 때로는 승리로, 또 때로는 패배로 묘사되는데, 패배의 경우라 해도 근본적인 실패로 귀착되지는 않는다. 이 드라마의 최종 에피소드에서, 바틀렛은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간다.

비행기 안의 마지막 장면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바틀렛에게 그의 부인이 “제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묻자, 바틀렛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일!” 강한 여운을 남겨주는 이 ‘내일’이란 마지막 대사는, 극중에서 바틀렛이 그의 비서 및 보좌관들에게 하나의 과제나 안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지침을 내려준 다음에 곧바로 던지는 물음, 즉 “다음 건은 뭐지?(What's next?)”와 서로 의미론상의 울림을 갖는다.

이재현(이하 현) 미스터 프레지던트,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바틀렛 쉬니까 좋아졌어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게 급격하게 증상이 나타날 때도 있고 반대로 잠잠할 때도 있는데 맑은 공기 마시면서 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서 그런가 봅니다.

현 재임 기간 중에 제일 힘드셨던 때가 언제였지요?

바틀렛 내 지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숨겨 왔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털어놓아야만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지요. 비서실장을 제외하고는 백악관의 최측근들에게조차 숨겨 왔었으니까요.

현 막내 따님이 납치되었을 때가 아니었던가요?

바틀렛 그거야 아버지로서 힘들었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아버지로서의 불안한 상태가 대통령직 수행에 영향을 줄까 봐서, 수정헌법 제25조에 따라 일시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하원의장에게 넘겼던 겁니다. 수정헌법 제25조는 대통령의 면직, 사망, 사직 혹은 권한 및 직무 수행능력의 상실과 같은 상황을 다루는 조항인데, 원래는 상원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부통령에게 넘겨야 하지만, 당시 부통령이 공석이라서 다음 순위로 넘긴 거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원의장이 다수당이자 야당인 공화당 출신이라서 퍽 난처하기는 했지만, 국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답니다.

현 미국 헌정을 모르는 저로서는 드라마를 보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납치된 따님을 찾고 나서는 다시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다시 회수하기는 했지만요.

바틀렛 미국 헌정사에서 미국 대통령의 유고 내지는 사직 상황에서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제법 여러 번 있었지요, 또 대통령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넘겼다가 되찾은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어요. 1985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가, 2002년 아들 부시 시절에는 체니 부통령이 직무대행을 맡았었지요. 두 경우 모두 다 현직 대통령이 수술받기 위해 마취 상태로 들어간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었지요.

현 미국 헌정제도는 꽤나 정교하군요.

바틀렛 한국의 경우,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해서는, 국회의 결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의 최종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대통령이 직무를 손에서 놓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에 개헌을 한다면 꼭 명시적으로 고쳐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이건 제 충고에 불과하고, 당연히 결정은 한국 국민들이 하는 것입니다마는.

현 시즌 5에서는 여성 연방 대법원장 지명에 성공하셨는데요. 한국에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한 것과는 극단적으로 대조가 됩니다.

바틀렛 제가 접한 외신에 의하면, 노무현대통령과 청와대의 보좌진들이 정치적으로 미숙해서 전효숙씨를 망가뜨렸다더군요. 또 막무가내식으로 저지하려던 한나라당에게도 상당히 큰 책임이 있다고도 들었어요. 연방 대법관 지명과 관련된 제 경험에 의하자면….

현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는 그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공화당이 선호하는 매우 보수적인 인물을 동시에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셨지요?

바틀렛 정치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니까요. 드라마에 자주 나옵니다만, 웨스트 윙에는 수시로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실무적으로 드나들지 않습니까? 일차적으로는 대통령과 보좌진들이 정치적 의제와 정책을 의원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기 위해서고, 때로는 반대하는 의원들에게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이쪽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인 거지요. 그런 과정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현 여당 지도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심지어 여당과의 대화도 늘 회피해 온 게 최근 한국의 현실인데요…. 그런 점에서 미국이 매우 부럽습니다. 한국에서는 어쩌다가 청와대에 의원들이 간다고 하더라도 밥 먹고 사진 찍는 게 전부입니다. 청와대에서의 의원들 모습이 너무 드물다 보니까, 밥 먹으면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이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뉴스 거리가 되곤 하였습니다.

바틀렛 서로 다른 의견을 갖는다거나 때로는 그로 인해 정치적 갈등을 겪는다거나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란 늘 서로 다른 이해관계나 서로 다른 의견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원래 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다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해결해 나가야지요.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여당, 또 여당 내부에서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설득, 토론,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할 때, 자기 자신도 상대의 그럴듯한 논리에 대해서는 기꺼이 설득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 아, 그렇군요. 노무현대통령의 경우에 검사들과 대화를 할 때나 천성산 터널 문제로 스님들을 찾았을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로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해 왔더라면 좋았을텐데요. 노무현 대통령은 나름대로 자질도 있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북한이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거꾸로 국내에서 정치적 핵 폭탄이 터지는 꼴이니까, 국민들이 이제는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간헐적인 정치적 핵 실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틀렛 저는 동업자끼리는 비난하지 않는다는 직업 윤리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노 코멘트입니다. 게다가 이미 한국에서는 버시바우 미국대사랑 버논 벨 주한 미8군사령관이 계속해서 정치적 ‘막말’을 해대는 통에 미국에 대한 인상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나빠졌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현 마지막 질문인데요, 미스터 프레지던트 역을 맡았던 마틴 쉰의 연기는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바틀렛 나의 열정과 카리스마를 잘 보여주었지요. 그럼, 다음 주일날에는 한국의 모든 국민, 특히 겨울에 집 없는 노숙자들을 위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현 고맙습니다. 저희들도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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