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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탈고 때 절반은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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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탈고 때 절반은 버려"

입력
2006.12.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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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소설을 쓰는 비결이 뭐냐고요? 탈고할 때 원고의 절반은 버리는 거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54ㆍ사진)이 ‘영업기밀’을 공개했다. 4일 발간된 계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서다. 그는 매년 두 차례씩 그의 터키 집필실을 방문하는 한국어 번역자 이난아(40)씨와의 인터뷰에서 “한 땀 한 땀 각고하며 쓴 원고가 아깝다고 소설 어느 부분에 넣으려고 했다간, 균형이 깨지고 사족만 많은 작품이 나오게 된다”며 과감한 ‘제 살 깎기’가 좋은 소설 쓰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 빨강> <하얀 성> 등의 소설을 통해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돼온 파묵은 문장의 끝을 먹어버리는 느린 말투가 특징으로, 말솜씨가 없어 인터뷰를 기피하는 편. 요즘 처음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순수 박물관> 을 집필 중인 그는 인터뷰에서 “여주인공이 사용하는 장신구나 화장품 등의 물품을 모으고 있다”며 캐비닛에 모아둔 물건들을 통해 새 소설을 소개했다. “이건 화장품, 이건 거울…. 주인공 남자는 그녀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녀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의 물건들을 몰래 훔쳐서 자기 집에 진열해 놓곤 한답니다.” 파묵은 소설을 쓰기 위해 골동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모아 들인 물건들로 소설과 동명의 박물관도 개장할 계획이다.

파묵은 “내 소설의 소재는 내가 본 것, 경험한 것, 신문에서 읽은 것 등도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상상력과 내 주변에서 느꼈던 분노”라고 했다. “소설은 오케스트라가 있는 음악입니다. 지능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러니 나 자신에게 만족하면 소설이 계속 깊어지게 됩니다.” 하루 10시간씩 매일 원고를 쓰며 초고를 수도 없이 고쳐 쓰는 파묵은 성실함이 최고의 재능이라고 말하는 작가다.

그러나 그는 “문학이 세계를 구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서 보았을 때, 사실 다소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문학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소설을 쓰는 최종목표는 아닙니다. 나는 문학의 깊이를 좋아해서 소설을 쓰는 것이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5월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적이 있는 파묵은 “느낌상 한국은 터키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많은 것들이 터키보다 더 체계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의 고도성장은 누구나 다 아는 바죠.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휴대폰도, 카메라도 모두 한국산입니다. 하하하….”

“작가로서 현재 무척 행복하다”는 그는 “앞으로 이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열 편의 소설을 더 쓸 계획”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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