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두 얘기했지만, 오래 살아 뭐해? 이 험악한 세상.” 김 노인이 또 심통을 부리고 싶은 모양이다. “여보, 언제나 세상은 험악했어요. 그래두 사람들은 살잖아요?” 토닥대 주는 것은 늘 아내의 몫이다. 극단 장두이 레퍼토리의 <황금 연못> . 황금>
부쩍 매서워진 날씨를 따스한 연극 무대들이 다독인다. 호화, 대형, 메커니즘, 스타 경쟁으로 치닫기 십상인 요즘의 문화 지형도에서 사색의 기회는 작은 무대의 몫이다. 소극장 무대 특유의 인간미는 덤이다.
<황금 연못> 은 1981년 제작된 동명 할리우드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박 웅(66ㆍ전 연극협회 이사장) 장미자 등 실제 부부인 노배우 커플이 펼치는 연기가 살아 있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독립심 강한 딸이 이혼한 뒤, 재혼 상대라며 함께 온 의사와 노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이야기다. 갈등을 빚던 딸이 노부모와 화해하는 대목에서는 연습실 배우들의 누선(淚腺)이 뜨거워졌다. 황금>
이 무대는 덤으로, 한 편의 외국 영화가 두 한국 극단에 의해 연극으로 탈바꿈해 동시 상연되는 기록도 세우게 됐다. 권성덕 정영숙 박순천 등 인기 탤런트들을 모아 공연중인 극단 유의 <황금 연못> 이 원작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추적한 수채화라면, 한국적 정서를 부쩍 이입시킨 이 무대는 코믹 가족극을 지향하고 있다. 원작에 구수한 된장을 푼 셈이다. 6~17일 대학로극장. 장두이 각색ㆍ연출. 수~금 오후 8시, 토ㆍ일 4시 7시, 월ㆍ화 쉼. 1588-7890 황금>
한국연극배우협회의 <그 여자의 소설> 은 대단히 한국적인 페미니즘을 보여준다. 구두쇠에다 고집불통인 남편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하는 본처와 작은 댁. 험악한 세월 속에서, 서로 다독이며 지내 온 두 사람은 이제 친자매다. 그>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한국사의 격동기속에서 우리의 가족 시스템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리 할머니들은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넘겠다”고 입버릇처럼 뇌까린다. 평범한 소재는 아니지만, 무대는 바로 그 평균적 한국 할머니가 겪어낸 삶의 시간을 엮어낸다.
작가 엄인희씨의 개인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을, 혹독한 완벽주의로 알려진 연출가 강영걸씨가 무대화한다. 1995년 서울연극제 상연 당시 전회 매진 사례를 빚은 무대이기도 하다. 이용렬 박기산 등 출연. 8~17일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월~금 오후 7시 30분, 토ㆍ일 4시 30분 7시 30분. (02)764-5087
자식을 독선적으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고집은 끝내 파멸을 부른다. 한러 합동 극단 코러스의 <아버지> 는 어느 딸의 교육 문제를 자기 독단대로 처리하려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몰락을 그린다. 지난 4월 세계 명작 국내 초연 시리즈의 1편에서 선보였던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의 뒤를 잇는 무대다. 크로이체르> 아버지>
근대 연극의 아버지인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을 러시아의 국립 연극 아카데미 교수인 지차콥스키가 연출한다. 2004년 화제작 <갈매기> 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카펠류쉬가 상징과 사실주의라는 두 극단을 아우르는 무대 미술로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극단 이름은 한국(Korea)과 러시아( Russia)를 합친 것. 백성희 윤주상 등 출연. 4~31일 서강대 메리홀. 화~금 오후 7시 30분, 수ㆍ토 3시 7시 30분, 일 3시. (02)744-0300 갈매기>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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