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5일 연간 수출액 3,000억 달러(한화 278조원 상당) 고지에 올라선다. 1964년 1억 달러로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민 지 42년만에 수출액이 3,000배로 증가한 셈이다.
3,000억 달러의 수출액은 지금까지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중국,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벨기에 10개국만이 달성했을 정도로 의미있는 수치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1,400만대, 휴대폰 17억개를 수출해야 벌 수 있는 액수이며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납세액의 1.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리나라 수출액은 77년 100억 달러를 돌파한지 18년만인 95년 1,000억 달러를 기록한 뒤 2004년 2,000억 달러, 올해 3,000억 달러로 가속도를 내고 있다. 수출 품목도 어패류 등 1차 산업에서 경공업제품, 중화학공업을 거쳐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LCD패널 등 최첨단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고도화됐다.
수출 3,000억달러 돌파는 우리 경제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경사지만, 5,000달러, 1조달러 등 수출한국이 나아갈 길을 더 큰 고지를 올라가는데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 만큼 우리 앞에 닥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환율 문제가 수출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닥을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하락하고 있는 원ㆍ달러, 원ㆍ엔 환율로 인해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과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가 절상될 경우 업계가 받는 타격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대-중소기업, 품목간 양극화도 수출한국이 극복해야 할 심각한 과제다. 최근의 수출 호조는 사실상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을 뿐, 중소기업들은 원고 및 제품경쟁력 약화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중소업계는 현재처럼 원화가치가 상승할 경우 수출을 포기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환율무대책을 맹비난하고 있다. 2001년 42.9%였던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이 올 들어 32%로 떨어진 것도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중소기업의 수출활동 참여율도 하락해 1,000만달러이하 수출업체수가 최근 2년간 10%이상 감소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마케팅 능력, 브랜드 인지도 등 비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저임금에 기반을 둔 중국, 동남아국가등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수출지역도 중국, 미국, 일본 등 3대 시장,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어 중국 경제 침체 시 우리나라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무역협회 신승관 박사는 “수출지역 양극화를 해소하기위해서는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 신흥시장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과 내수의 상관관계가 갈수록 엷어지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수출 증가속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 괴리현상이 2003년부터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가 투자와 소비를 증가시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로인해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던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화하는 것도 이 같은 선순환 구조 붕괴가 주된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재계는 수출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규제완화 요구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에 정부의 지원은 어렵다는 점을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하면서, 애로요인 타개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달러와 엔화의 약세속 원화가치만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어 수출업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수출과 내수의 괴리나 산업연관효과 감소 문제점은 새로운 수출 품목 개발, 자율적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확대, 외국계 기업의 직접투자 유치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경북 구미공단 르포] 휴대폰·LCD 수출 부진… "IMF때가 나았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1번지인 경북 구미. 세계적인 IT수출 도시로 우뚝 선 이 지역에 최근 수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든든한 버팀목인 삼성 애니콜과 LG디스플레이 산업이 환율하락과 후발국의 추격 등으로 공장 가동이 잇달아 멈추면서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공단 내 A기업에서는 100여명이 붙어 있던 공장 내 생산라인 1개가 지난 달 중순 가동 중단됐다. PDP, LCD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B사도 최근 생산라인 1개의 가동을 멈췄다. 비정규직들은 실업자가, 정규직도 잔업 특근이 사라져 월평균 수입이 30% 이상 감소했다.
LG필립스LCD 공장은 전국적으로 고졸 생산직 2,000여명을 채용해 놓고도 발령을 사실상 무기연기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도 인원을 줄이지 않던 기업들이 조업중단과 채용유보라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애니콜 매출액도 지난 해 25조원에서 22조원으로 10%정도 하락할 전망이다.
구미공단의 부진은 수출실적으로 알 수 있다. 10월말까지 수출액은 258억 달러. 이런 추세면 올해 목표 340억 달러는커녕 지난해 달성했던 305억 달러도 위험하다. 이 때문에 국내 전체 수출액에서 구미공단의 비중이 지난해까지 11% 이상을 유지했으나 최근에는 9.7%로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필립스사는 내년 7월 이후 LG필립스LCD의 지분을 매각하고 LCD패널 구입선을 다변화할 것으로 알려져 타격이 예상된다.
이처럼 수출기업들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회사 내 부서 회식을 줄이는가 하면 외부에서 하던 간담회 장소를 구내식당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기업체 직원들도 “주변에서 ‘어디는 구조조정 한다’ ‘누구도 일감이 없어 쉬고 있다더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니 심리적으로 위축돼 지갑을 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구미상공회의소 김종배 조사부장은 “수출공단인 구미에서는 외환위기 때도 일반 시민들의 체감경기가 지금보다는 나았다”며 “디스플레이산업의 부진으로 중소제조업체의 30% 이상이 조업단축에 들어갈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휴대폰 디스플레이에 이어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해야만 공단 전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교와 문화시설 등 고급인력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미공단의 부진은 지역경제 전체를 위축시키고 있다. 역전과 터미널,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수십대의 빈 택시가 줄지어 서 있다. 구미시 인동동 삼성전자 후문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43ㆍ구미시 인동동)씨는 “지난해만 해도 기업체 회식 예약이 벌써 끝났지만 올해는 아직 한 팀 밖에 못 받았다”며 “이대로 가다 구미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구미=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전병용기자 msyu@hk.co.kr
현오석 소장 "美·유럽과 FTA 체결해 차이나 리스크 줄여야"
“이제 수출 5,000억 달러, 나아가 1조 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미국 및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체결해 차이나 리스크(China risk)를 줄여 나가야 합니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 현오석(56ㆍ사진) 소장은 4일 “경제가 어려운데도 수출 3,000억 달러 고지에 올라선 것은 한국의 기술 수준이나 제품 경쟁력이 선진 통상 국가에 바짝 다가섰음을 보여주는 쾌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 소장은 그러나 “우리나라의 3대 수출시장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중국 경제 침체 시 수출이 전반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FTA 체결을 통해 미주 유럽 등 다른 지역 시장 확보에 한층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외 수출비중은 중국 21.8%(지난해 기준), 미국 14.5%, 일본 8.4%였다.
현 소장은 “우리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조선 등 5대 품목이 42%를 차지할 정도로 일부 품목에 편중돼 있다”면서 “이들 품목의 경기 사이클에 따라 주력제품 수출과 우리 경제 전체가 급등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수출시장을 시급히 다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는 중국을 뿌리치기 위해 기술 개발을 통한 고급화 전략과 함께, 자동차와 반도체 이후 새로운 ‘히트 상품’을 발굴해 내는 것이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현 소장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35%의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은 앞으로도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면서도 과거와 달리 수출호조→투자확대→일자리 증가→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약화된 점을 문제로 꼽았다. 이를 타개하려면 기업규제를 혁파하고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등 기업환경을 개선,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현 소장은 덧붙였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