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전문가 좌담/학계 등 사상논쟁 가열… 어떻게 봐야 하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전문가 좌담/학계 등 사상논쟁 가열… 어떻게 봐야 하나

입력
2006.12.04 00:00
0 0

학계를 중심으로 한 보수-진보 양 진영의 공방, 엄밀히 말하자면 뉴라이트 진영의 좌파 지식인에 대한 공세가 심상찮다. 심상찮다 함은, 실명비판이라는 진일보한 논쟁의 형식이나 내용 혹은 공방 주체들의 중량감 때문이 아니라, 공방이 놓여있는 시간적 맥락 때문이다. 이념 대립의 본질은 마주 선 이념의 실체보다 대립이 촉발되는 맥락 속에 감춰져 있기 십상이다.

또 논쟁의 내용이 아니라 맥락, 달리 말해 이론 바깥의 논리에 좌우되는 공소한 이념 대립은 우리 사회가 서둘러 극복해야 할 낡은 진영 전선을 고착화할 따름이다. 최근 일련의 이념 공방, 폭력사태로 얼룩진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심포지엄 등에서 내년 대선을 이념 구도로 끌고 가기 위한 시나리오를 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우리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이념 대립의 맥락을 살펴보고, 거기에서 소모적인 요소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좌담회는 2일 한국일보 인터뷰실에서 진행됐다.

윤평중= 뉴라이트의 이론적 빈곤과 학술운동의 형식을 띤 정치운동이라는 비판에 앞서, 이념공세의 배경 그리고 이들의 공세가 어째서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느냐 하는 점을 먼저 짚어보죠. 저는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민심 이반의 부산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정부가 실상 진보 정권도 아니지만 진보적인 제스처를 구사함으로써 정권의 실패가 진보 진영 전반의 실패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종일= 이 정권이 처음부터 왼쪽 깜박이 켠 채 우회전했고, 앞으로 간다면서 역주행한 건 여러 정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진보정책의 실패가 아닐지 모릅니다. 오히려 정치적 민주화세력이 사회 경제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 문제였지요. 정부 규율, 시장 규율, 시민사회 규율의 균형 구도에서 정부 규율이 급격히 약화했고, 기득권층이 그 이행기 힘의 공백을 이용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서 민주화가 되면 분배도 개선되고 복지도 나아지고 고르게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는데 살림살이는 거꾸로 가는 겁니다. ‘박정희 향수’도 거기서 생겨나는 거죠.

윤= 경제 실패, 국가 관리기능 실패 못지않게 시민사회 영역의 실패도 주요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소수 약자라는 피해의식을 지닌 채 출범했습니다. 그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해 진보적 지식인들을 대거 포섭하고 비판적 시민운동 진영을 정치적으로 관리했죠. 진보 진영도 적극 호응했고요. 그 결과 정권의 실패가 진보진영 전반의 실패, 그리고 뉴라이트와 보수언론의 이른바 ‘홍위병’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것입니다.

정해구= 정권의 무능만 탓할 게 아니라 진보 개혁세력 전체의 무능과 파탄을 인정해야지요. 시민사회단체의 과잉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걱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정책을 전공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시민사회의 반(反)정치, 곧 정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시민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화와 민주화 가운데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고민일 겁니다. 그 같은 반성적 고민 없이 진행되는 보수 진보의 대립은 달라진 세상에 눈 감고 과거의 전선에 서서 싸우는 일일 겁니다.

유= 1일 열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이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를 산업화세력, 민주화세력이라는 용어로 나누지 않습니까. 그런데 IT 첨단산업이나 영화산업 등 21세기형 산업의 주역은 민주화세력으로 분류되던 이들이라는 겁니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이론진영은 과거의 도그마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이죠.

정=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 미래를 위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신보수라는 게 구보수와 달리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나온 것 아닙니까. 이들은 권위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자유주의를 말하지만, 정치적 자유주의의 귀한 가치들에는 눈을 감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가치, 기업의 가치만 중시하는 것 같아요. 진보 진영도 정치적 민주화와 세계화 이후 국민들의 생활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낡은 패러다임에 안주했어요.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한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호남지역주의에 기반해 대권을 쥔 참여정부가 열린우리당을 만들며 지역기반에서 벗어나고자 한 점은 평가한다 치더라도 과거와 단절한 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것, 민주 세력을 기반으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투신하면서 자신의 토대를 부정한 것이 그것입니다.

윤= 정 교수님 말씀에 한 떫?덧붙이자면, 시민사회단체의 과잉정치나 반(反)정치 모두 문제이긴 합니다만 한국 정치 현실을 길게 보자면 시민사회단체의 과잉정치가 늘 더 문제였던 것 같아요. 조선시대에는 지식인 사회가 곧 관료사회였지요. 그 출세문화와 정치 전통이 우리 시대 지식인집단의 내면에 연면히 답습되고 있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유= 또 문제는 참여를 하더라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지향하는 가치를 정책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의지야 굳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자신의 의지가 현실정치와 조화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는 의연히 떨치고 나와서 정치판 바깥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 투신한 진보적 지식인이나 시민사회단체 인사 가운데 그 같은 원칙에 충실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윤= 저는 보수 진보의 퇴행적 논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사회 공론의 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시민사회든 언론이든 대학사회든 공소(空疏)한 진영논리가 팽배해있어요. 며칠 전 서울대 교과서포럼 사태는 명백한 폭력사태였어요. 뉴라이트 진영의 교과서 논리라는 게 구(舊)라이트보다 더 오른쪽으로 치우친 퇴행적 시각을 담고 있지만 명색이 학술행사인데, 4ㆍ19단체 회원들이 보인 행태는 그들이 혁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자유민주주의 정신 곧 언론 사상 양심의 자유를 온몸으로 짓밟는 것이었죠. 그것을 ‘몸싸움 - 단상점거’ 식으로 축소 보도한 한겨레신문의 보도 행태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 용공보도 당시 조중동이 보였던 왜곡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정= 공감합니다.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공론의 장은 중요하죠. 덧붙여 뉴라이트든 진보진영이든 각자의 원칙과 이론에 입각해서 구체적인 사안, 예를 들자면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서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건설적 보수가 건설적 진보를 키우고, 건설적 진보가 또 건설적 보수를 키우는 거죠.

유= 이념대결이든 이론대결이든 그것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려면 거대담론이나 레토릭으로 부딪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긴박하고 실질적인 문제, 곧 생활정치의 문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데 저도 적극 찬성입니다. 지식인이든 정치인이든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현안을 두고 내용 있는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안에 따라 보수 진보의 접점도 있을 겁니다. 미래지향적이라는 게 소모와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윤= 식상하지만 이 대목에서 현 정부 또 한 번 비판하자면 분열의 정치, 뺄셈의 정치로 일관한 게 지금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고, 그 결과가 현실의 참담한 실패 아니겠습니까. 다만 통합이라는 게 두 분 말씀처럼 구체적인 비전과 대안에 대한 토론과 탐색의 과정을 통해 다가가야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 담론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관념적인 담론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도 조선시대 이후 우리 지식인사회의 병폐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토론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보수와 진보가, 또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생활정치의 문제들로 나아갔다. 교육 세습의 문제와 양질의 공교육 육성방안, 일자리 창출과 부동산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한계와 필요성, 고령화 문제 등을 둘러싼 문제 제기와 대안과 비판과 반비판이 활발하게 이어지더니, 정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전 요즘에는 TV토론회를 안 보게 됩니다. 양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아무런 생산적인 합의 없이 서로 자기 얘기만 하다가 마는 식의 토론이 과연 바람직한가 의문이에요.” 유교수는 “그 역시 언론의 선정성, 우리 사회를 마취시키고 있는 진영 논리의 반영이겠지요”라고 받았고, 윤 교수는 “그래서 이론적 이념적 논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건강한 공론의 장이 시급한 겁니다”라고 동조했다.

정리=최윤필기자 walden@hk.co.kr사진=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