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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화재를 찾아라" 서울청 문화재수사반 동행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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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화재를 찾아라" 서울청 문화재수사반 동행취재

입력
2006.12.0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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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사라지고 있다. 도자기나 고서(古書)뿐만 아니라 한 집안 조상의 영정(影幀)이나 묘비(墓碑)까지 오래된 물건은 모두 문화재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도난 당한 문화재는 무려 2,500점이 넘는다. 하지만 회수율은 고작 2%다. 도굴ㆍ절도에서 유통까지 점조직으로 이뤄지는 은밀한 유통 구조 탓에 한 번 사라진 문화재가 제 자리로 돌아오기는 극히 어렵다. 게다가 문화재는 선의취득(善意取得ㆍ장물인지 모르고 소유함) 시효가 7년밖에 안돼 도난 문화재가 버젓이 박물관 등에 전시돼도 원 소유주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7월 출범한 국내 유일의 문화재 도난 전담 수사팀인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문화재수사반과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사라진 문화재를 동행 추적했다.

서울 → 강원 양양군 → 광주

30일 새벽 5시. 형사 5명과 승합차에 올랐다. 강력사건만 10년 이상 맡은 베테랑들이다. 김윤석(44) 반장은 “문화재 사건의 특성상 지방 곳곳을 뛰어 다녀야 해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며 “한 달에 2만7,000㎞ 정도 뛰어 타이어 모두 교체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일선 경찰서 근무 때부터 문화재 전문 요원으로 명성을 떨친 김 반장은 문화재수사반을 만드는 데도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문화재 사건을 다루다 보니 훔치고 수집하고 판매하는 은밀한 거래선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문화재 절도와 연관된 2만여명의 인적사항을 확보해 연결고리를 캐고 있다.

[30일-오전 9시 양양] "출처 의심 물건이"…긴급출동

오전 9시. 강원 양양군에서 50대 남성을 만나 제보를 받고 몇 년 전 열린 한 고미술품 전시회 도록(圖錄)을 건네 받았다. 당시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이 여럿 나왔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해 애태우던 참이었다. 이영권(38) 형사는 “의심가는 작품이나 소장가를 역추적해야 하는데 주최 측에 자료를 요청하면 말이 새 일을 그르칠 수 있다”며 “문화재 절도와 유통보다 한결 더 은밀한 수사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광주 골동품 가게] 古書 절도 중간책 확인 개가

오후 4시. 광주의 한 골동품 가게에 도착했다. 올 초 국내 한 지역에서 무더기 도난 당한 고서를 유통시키는 것으로 의심되는 중간책이 운영하는 곳이다. 수사팀은 잠복 끝에 쫓던 사람과 주인의 이름, 얼굴이 같은 것을 확인하고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일단 압수수색 영장용으로 가게와 중간책(주인)의 사진을 찍은 뒤 발길을 돌렸다. 황환걸(47) 형사는 “유통 경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섣불리 한 쪽을 먼저 잡아봐야 선이 끊어지면 허탕”이라며 “일당을 한번에 옭아매기 위해서는 6, 7개월 이상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김회진(38) 형사는 “범인을 잡아도 훔친 문화재를 감춰놓고 모르쇠로 버티면 어쩔 도리가 없다”며 “범인과 문화재를 동시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뜸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광주 → 경북 예천군 → 대구 → 대전 → 충북 청주시 → 서울

[1일 새벽 5시 예천] 祭室 문짝도 떼가… 방문 수사

1일 새벽 5시. 경북 예천군 행이다. 한 가문이 대대로 물려온 제실(祭室)의 문짝 30여점이 하룻밤에 없어졌다. 이현탁(42) 형사는 “요즘에는 훔쳐가지 않는 물건이 없어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했다.

한창 현장 조사 중이던 오전10시. 휴대폰을 받은 김 반장이 “던지는 물건이 떴다”고 외친다. ‘던진다’는 훔친 문화재를 ‘범인’이 포기해 경찰에 넘기는 것을 일컫는 은어다. 대구의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40대 남자가 종이로 싼 물건을 건네고 총총히 사라진다. “왜 그냥 보내느냐”고 묻자 “어차피 심부름꾼이기 때문에 잡아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1일 오전 대전 문화재청] 범인이 '던진' 물건 감정 의뢰

종이를 펼쳐보니 사람 크기의 영정이다. 감정을 위해 대전 문화재청으로 향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장을 지낸 이운룡(李雲龍ㆍ1562~1610) 장군의 영정으로 1997년 도난 당한 작품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강신태 단속반장은 “1919년 다시 그린 것이지만 무인 초상화 자체가 국내에 몇 개 없는 귀중한 문화재”라며 반색한다.

[1일 오후 청주 고인쇄 박물관] "직지 상권 꼭 찾겠다" 각오 다져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청주 고인쇄박물관에 들렀다. 수사팀의 꿈인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ㆍ1377년 청주 흥덕사 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직지심경 하권은 프랑스에 있지만 상권의 소재는 미궁이다. 김 반장은 “우리 팀은 직지심경 상권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다”며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 국보급만 35점…전문 도굴꾼이 말하는 실태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시중에 있다"

-직지심경보다 수십 년 앞서 보안허술 사찰·종가 '표적'

"직지심체요절보다 수 십년 앞선 고려시대 금속활자본이 세상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지난달 말 충남 공주교도소에서 만난 문화재 전문털이범 서모(46)씨는 사실이라면 세계 문화재계를 뒤흔들만한 엄청난 말부터 꺼냈다. 서씨는 "2000년 4월 경북 안동시 광흥사에서 직지심체요절보다 간행 시기가 빠른 금속활자본을 훔쳤다. 현 소장자가 내게 1,500만원을 주고 샀는데 '3억원을 더 줄 테니 입을 다물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소시효(7년)가 지나는 내년 4월 이후에는 이 금속활자본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록상 최고(最高)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ㆍ1234년 간행)일까.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서씨는 국내 문화재 도굴꾼 1인자로 꼽힌다. 2001년 검거 당시 경찰이 밝힌 것만 해도 사리, 탱화, 불경 등 국보급 문화재 35점을 훔쳤다. 9월 삼성리움박물관이 경기 가평군 현등사에 반환한 사리와 사리를 담은 그릇도 그가 훔친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81년 구입해 97년 기증한 것"이라고 버텼지만, 서씨가 지난해 11월 "80년 내가 훔쳤다"고 뒤늦게 털어놓으면서 결국 문화재를 돌려줘야 했다.

서씨는 "사찰이나 종가 등은 보안이 엉망"이라며 문화재 도난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탑과 불상 안에 넣어 두는 사리나 불경 등은 스님들도 종류와 수량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뭐가 얼마나 없어졌는지조차 모르니 도굴꾼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씨는 특히 "유명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중 상당수는 도난 문화재라고 보면 된다"며 문화재에 관해서는 선의취득의 예외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훔친 유물이 버젓이 전시된 것도 봤는데 박물관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7년의 공소시효만 지나면 떳떳하게 장물을 사고 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마지막으로 "조상의 혼이 담긴 문화재를 몇 푼 돈에 눈이 어두워 훔친 지난 인생이 부끄럽다"며 "평생을 참회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공주=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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