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운동권 일변도였던 대학가 총학생회가 변하기 시작한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에는 그 양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전국 주요 대학에서 운동권 후보들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하면서 대학가 전체적으로 운동권의 영향력이 급속 쇠퇴하고 있다. 크게 보아 요즘 우리 사회 전반의 탈이념적 정서나 가치 변화의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일반 학생들의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도리어 무관심에 따른 부작위적 결과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대에서는 몇 차례 투표기간을 연장했는데도 끝내 투표율이 절반에 못 미쳐 총학생회 선거가 아예 무산됐고, 고려대 한양대 등은 연장투표를 거쳐서야 가까스로 총학생회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대학생들이 정치ㆍ사회적 거대담론은 고사하고 당장 자신들이 소속된 학교 공동체에 대해서조차 무심해지는 경향은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과거 대학 총학생회가 편향된 좌파적 정치이념에 매몰돼 대학문화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해 왔다면, 학생들 사이에서 그 필요성이나 존재감마저 잃어 가는 요즘의 학생회 또한 대학문화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넓게는 특정한 거대가치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세계적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식 조류에서부터, 좁게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취업문제 등 여러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끊임없이 현실을 고민하고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는 대학의 존재이유, 혹은 대학인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에는 변함이 있을 리 없다.
지나친 무관심은 무분별한 열광과 짝을 이루기 마련이다. 둘 모두 건강하고 냉철한 이성과 판단이 배제돼 있다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심각한 정치ㆍ사회적 병리현상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대학생들이 큰 시각과 비전, 이상 등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 자질조차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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