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비용을 너무 비싸게 치루고 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첫 국회의장을 지낸 열린우리당의 김원기 의원이 얼마 전 노무현 정부에 대해 내뱉은 탄식이다. 1995년 김대중 전대통령은 지방선거 승리에 고무되어 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정계에 복귀했다.
김 전의장은 이에 반대해 통합야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통추를 만들어 함께 고생을 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일등공신이다. 그런 만큼 그의 탄식은 무게감이 실린다.
● 통합신당과 비정규직 법안 처리
노무현 정부가 또다시 노 대통령의 말 때문에 비싼 언어 비용을 치루고 있다. 노 대통령이 또 다시 임기단축을 시사한 것이다. 그 발언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입을 주체하지 못하는 노 대통령의 또 한 번의 경박함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내심이 이제 한계가 달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왜 미국의 대통령학 연구자들이 대통령의 성장과정과 정서적 안정성과 성숙성을 그토록 중요하게 간주하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문제발언의 파문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번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추진하고 있는 통합신당 움직임에 대해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당 사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정말 어쩌자는 것인지 짜증이 난다.
그러자 김 의장이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 2의 대연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파 간의 대격전이 막을 올린 것이다. 민주당과의 통합이 결국 호남의 지역주의에 기댄 반한나라당 지역연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동시에 김 의장의 지적도 정곡을 찌르는 정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영남지역정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권력을 통째로 내줄 수도 있다며 대연정을 제의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과연 호남지역주의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임기단축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이 협박정치를 중단하라고 격렬한 비판을 쏟아놓고,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이 당의 향방을 놓고 사생결단식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차천리로 진행된 중요한 사건이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 그리고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22개월이나 끌어 온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확대법안을 국회가 통과시킨 것이다. 그것도 민주노동당이 결사저지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사이 좋게 손을 잡고 20분 만에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표면적 대립과는 대조적으로 노무현, 김근태, 한나라당의 반노동적인 신자유주의 대연정이 진행된 것이다(물론 이 법안이 비정규직 보호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개혁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는 등 전체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적이다). 그리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이 같은 신자유주의 대연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노무현-김근태-한나라당 대연정
노 대통령의 경우 한나라당에 이미 대연정을 제의한 전과가 있기에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노 대통령에게 대해 제 2의 대연정 운운하며 칼을 세우고 있는 김 의장과 열린 우리당의 통합신당파이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반노동적인 법안을 한나라당과 사실상의 대연정을 통해 통과시켜 놓고 왜 노 대통령을 제 2의 대연정 운운하며 비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 대통령과 김 의장이 제 2의 대연정 운운하며 사생결단식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은 둘 다 한나라당과 신자유주의 대연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놈이 그 놈"이다. 아니 높으신 대통령과 여당의 당 대표에 대한 예우를 해주자면 "그 분이 그 분"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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