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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따뜻한 손길'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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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따뜻한 손길' 내밀다

입력
2006.12.0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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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는 최근 이 지역 재래시장에서 발행하는 상품권 3억6,000만원어치를 노조비로 구입키로 했다. 전체 상품권(7억5,000원)의 절반에 해당한다. 최종 구입 여부는 7일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다. 집행부는 3일 “통과가 확실하다”고 밝혔다. 구입한 상품권은 조합원들에게 나눠 준다. 노조 관계자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결정했다”며 “침체에 빠진 재래시장과 지역경제가 살아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택관리공단 노조는 지난달 10일 특별한 노조 창립식(8주년)을 가졌다. 서울 등촌동 주공1단지 영구임대아파트의 독거노인 등 10가구를 찾아 도배를 해 주고 장판을 말끔히 깔아 줬다. 단지 놀이터 3곳의 시설도 모두 손을 봤다. 진성문 노조위원장은 “봉사 활동을 통해 자긍심과 보람을 느꼈다”며 “이런 행사들이 더 많아져 새로운 노동문화로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조가 달라지고 있다. 임금 인상에 목매고 정치파업에 온 힘을 쏟는 ‘투쟁만 하는 노조’가 더 이상 아니다.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돕고 베푸는 ‘아름다운 노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가난으로 고통 받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에게 학교를 지어 주기 위해 ‘사랑의 빵 나누기’ 모금운동도 하고 있다. 생산현장과 사무실 등에 빵 모양의 저금통 1만3,000개를 비치해 연말까지 7,000만원을 모을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1980~90년대 대표적인 강경노조로 불렸지만 최근 12년 연속 무쟁의를 기록하고 있다.

29일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 정기 대의원대회에서는 2007년도 사업계획 승인 순서가 되자 장내가 한때 웅성거렸다. ‘산간오지 농촌과 자매결연 맺기’ 등 노조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사업들이 안건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노조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내 “이제는 노조도 사회적 책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다수의 의견에 묻히고 말았다. 사업안은 절대 지지를 받고 통과됐다. 서울노총에는 320개의 노조가 있다.

LG전자 노조는 경영진과 함께 생활이 어려운 실업계 고교생들에게 ‘산업인력육성 장학금’을 준다. 직원 월급에서 1,000원 미만의 돈을 떼어내 기금으로 적립한 돈으로 저소득 가정의 중ㆍ고생들에게 교복도 맞춰 줬다.

한국도로공사 노조는 전문 봉사단체와 다름없다. 1월부터 서울역에서 1,500명의 노숙자에게 매주 목ㆍ금요일 따뜻한 밥을 퍼 주고 있다. 97년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고속도로 교통평화운동’을 전개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도로공사 노조는 교통사고 유자녀 장학사업, 독립유공자 후손 돕기도 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별일 다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내가 퍼준 밥을 맛있게 먹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고 말했다.

"노동계 사회공헌책임 깨달아

"노조는 봉사단체 아니다" 비판도

목청껏 '단결 투쟁'을 외치던 노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눔 봉사'를 속삭인다. 왜 일까.

"노동계도 이제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사회공헌 책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정길오 교육선전본부장은 "노동조건이 좋아진 건 1980~90년대 노조의 투쟁을 국민들이 많이 참아준 덕"이라며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파업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고 노조에 무관심한 일반 조합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노조 조직률은 1977년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저치인 10.3%에 그쳤다. 노조 가입 대상 근로자 10명 중 1명만이 조합원이라는 뜻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조 일 한다면 집안에서부터 말릴 정도로 인식이 안 좋은 게 사실"이라며 "봉사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갖고 있는 과격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연성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노조가 사용자를 상대로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지 자원봉사 단체는 아니다"는 비판이다. 한 노동 전문가는 "노조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봉사가 노조 활동의 중심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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