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시절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옷먼지를 들이키며 미싱과 보낸 봉제공 소녀들이 1일 패션 모델로 무대에 섰다. 패션쇼 이름은 이랬다.‘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하루 20시간씩 30년 동안 미싱을 타면서 스스로의 표현처럼 ‘머슴처럼’ 살았던 눈물의 시간들이 결실을 맺는 날이기도 했다.
어둠침침한 작업실 조명 대신 높고 밝은 조명을 받은 ‘아줌마 모델’들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패션쇼에서 ‘아줌마’는 없었다.수줍음과 설레임 가득한 소녀의 모습만이 자리를 대신했다.
이날 자리는 고(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 순옥씨가 2003년 설립한 사단법인 참여여성노동복지센터 ‘수다공방’이 마련했다. 1960~70년대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봉제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무대였다. 당시 동대문 의류시장 등지에서 이른바‘시다’(보조)로 일했던 봉제 아줌마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서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자긍심을 심어주자는 의미도 담겨있다.
모델들은 이날 평범한 30~40대 여성들이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스타일의 의상을 선보였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천연소재와 천연색감의 옷들은 흙 냄새와 햇볕이 가득 담긴 듯 했다.
패션쇼에 선 아줌마 모델들은 수다공방에서 재교육프로그램을 마친 1~3기 수강생 중 40명이다. 당초 작품 전시회 정도로 기획됐던 게 직접 입고 모델이 돼 무대에 서는 ‘쇼’로 바뀌었다. “모델은 무슨 모델이냐”며 손사래를 치던 아줌마들은 내친김에 자신이 만든 옷을 직접 입고 모델로 서보겠다고 달려들어 ‘일’이 커졌다.
무대에는 특별한 손님도 다녀갔다. 행사 소식을 전해들은 유명 인사들이 찬조출연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비롯해 이상수 노동부장관, 장하진 여성가족부장관,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등이 참석해 무대 분위기를 달궜다.
곽미순(47)씨는“이번 행사를 위해 패션쇼를 찾아 다녔다”며 “떨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한번 걸어보니 ‘체질’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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