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대문의 테베는 누가 건설했는가? 책에서 당신들은 왕들의 이름을 볼 것이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쌓아 올렸는가?
금으로 번쩍이는 잉카의 리마에서 인부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는 혼자였는가?카이사르는 갈리아를 패배시켰다. 그에게는 요리사조차도 딸려있지 않았던가?”(브레히트 <읽을 줄 아는 노동자의 질문> 부분) 읽을>
제왕들의 이름으로 나열되던 근대의 주류 역사학은 이 괴팍한 독일 시인의 질문을 아예 외면했거나 등한시했다. 그 질문에 역사의 광휘를 비춘 이들이, 지난 세기말의 세계 역사학계를 주름잡았고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랑스 아날학파다. 주인공의 정치사가 아닌 엑스트라의 사회ㆍ경제ㆍ문화 생활사,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를 중심에 놓고 인류 역사의 구슬을 꿰어온 이들이다.
아날학파의 거물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감독을 맡고 그 진영의 스타급 연구진이 ‘드림팀’을 이뤄 집필ㆍ편집한 우람한 책 <사생활의 역사> 가 완역됐다. 2002년 1, 3, 4권이 나온 데 이어 2권(중세~르네상스)과 5권(제1차대전~현재)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사생활의>
책의 주인공은 ‘갑돌이’ ‘갑순이’다. 그들의 삶이 이 책의 내용이다. 예컨대 이 책은 카이사르의 정복전쟁이 언제 어떻게 진행돼 지중해와 동방제국의 지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전쟁의 시간을 누빈 장교와 사병들이 어떻게 살다 죽었고, 어떤 풍속과 예술을 누렸는지 설명한다. 1권의 차례를 훑어보자. ‘1부 로마제국- 1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2 결혼, 3 노예들, 4 한집안 식구와 해방 노예, 5 공적 생활이 사적이었던 곳…’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의 흐름을 지배집단 및 지배의식의 교체로만 설명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 회피다. 역사는 삶의 변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 삶의 모습을 규명하는 방식으로 인류 역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꿰뚫는다. 그럼으로써 로마제국 이래 인류의 미시사적 풍경들을 이은 장대한 파노라마를 이룩했다. 각자 구미에 맞게 풍속사나 예술사로 읽어도 좋고, 사회사나 담론의 역사로 읽어도 무방하다.
책의 분량은 5,000페이지에 이를 만큼 방대하다. 하지만 ‘눈(眼)을 위한 화려한 축제’라는 명성처럼, 책은 풍성한 도판과 이미지로 시종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령 현대사회의 가족제도를 설명하는 5권의 한 장은 이혼법원의 모퉁이에 앉아있는 남녀의 사진과 함께 이런 설명을 달고 있다. “이혼(디보르스)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디보르티움’이라는 라틴어는 ‘각자 제 갈 길을 가다’라는 뜻의 동사 ‘디베르테레’에서 나왔다. 만남은 사적인 일이지만 헤어지는 것은 사법부의 허가를 요한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사생활’은 근대 부르주아시대 이후 정착된, 공적 영역에 반하는 개념으로서의 사적 영역인 동시에 기왕의 역사가 배제하고 외면했던 인류 역사의 사적 공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사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 자유주의의 개인지상 이데올로기와 기술문명의 현란함에 현혹돼 국가 통제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뒤비의 서문 속 이런 문장이, 그래서 덜컥 가슴에 걸린다. “오늘날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사생활의 마지막 성벽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만일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곧 개인이라는 존재를 방대하고 두려운 데이터 뱅크 속에 들어있는 숫자들로 만들어버리고 말 여러 형태의 국가 통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따라서 바로 지금 시급히 인간의 본질을 보전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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