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거리며 종종걸음 치는 중닭들을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는 양계농가 주인의 모습이 참 안됐다. 그는 주름진 얼굴로 "다 망한 거지요. 빚만 잔뜩 지고 나앉게 생겼어요…." 이런 장면을 보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열린우리당을 지킬 것이다"라고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취재진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당적을 포기하는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폭탄선언으로 국민들 속을 뒤집어놓더니 이틀 만에 다시 무슨 얘기인가? 하기야 전날 목포에 가서는 또 "노무현, 당신 임기 얼마 안 남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힘을 모아주십시오"라고 정반대의 말씀을 했었지….
아, 정말 너무하다. 2006년 12월 대한민국은, 실업자에 비정규직에 구조조정 당하면 어쩌나 가슴 졸이는 가장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는 대졸생,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접는 서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 막막한 농민들,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조금 있는 사람은 조금 있는 사람대로 다들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대체 힘든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데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성실히 노력하겠다"고 엄숙히 선서한 대통령이 왜 민생이나 안보와는 무관한 이슈를 연일 쏟아내는 것일까? 지금 대통령이 여당 당원으로 남아 있느냐 마느냐, 여당의 이합집산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저질 TV 드라마 수준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벤트일 뿐이다.
그나마 이 드라마는 국민 시청률이 10% 미만으로 극히 저조하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C급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말로써 말이 많은 대통령과 여당의 집안싸움을 매일 전하는 중계방송을 보고 싶지 않다. 하나같이 대통령의 본질적 책무와 무관하고 사람들의 절실한 현실문제와는 동떨어진 직업정치 하는 사람들의 이권다툼일 뿐이다.
1970~80년대만 같았어도 칼럼니스트들은 "군자는 집 안에 있으면서 옳지 못한 말을 내뱉으면 천 리 밖에서도 그르다 여긴다. 말이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요, 행동은 가까운 데에서 시작되나 멀리서도 보이게 마련이다.
군자는 세상을 움직인다고 하였으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뜻에 맞는다고 마구 사람을 썼다가는 반드시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중국 고대 정치서 <<설원(說苑)> >에서)라는 식으로 고사를 끌어대가며 점잖게 충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 봐야 노 대통령이 워낙 강렬한 말을 즐기니 먹힐 것 같지는 않다. 설원(說苑)>
올해 8월의 미국 MSNBC 방송 스타일로 하면 제목을 '노무현은 바보인가?'로 잡고 "노 대통령이 앞으로 이 나라에 대한 통치를 계속할 지적 호기심이 있는지 큰 의문이다"라고 사뭇 진지하게 비꼬았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청와대가 어떤 신문에서 "계륵(닭갈비) 대통령"이라고 한 비유 정도를 가지고 골을 낸 걸 생각하면 이런 식의 비판도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그래서 이렇게,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싶다. 지금 국민들은 힘들다. 대통령이 국민 걱정을 노심초사로 해도 힘겨울 판에 국민이 대통령 걱정을 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대통령이야 퇴임하면 연금이라도 괜찮게 나오지만 많은 서민들은 연봉제요 뭐요 해서 퇴직금은 중간정산으로 끝났고, 국민연금은 나중에 가면 크게 의지할 수준도 못 된다고 한다.
진짜 힘들고 어렵고 서러운 것은 대통령이나 여당 의원들이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이런 식의 모습을 계속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냥 좀 시끄럽지만 않게 해 주었으면 참말로 고맙겠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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