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양손을 비비면 따뜻합니다. 매서운 삭풍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너와 내가 한데 어울리는 작은 행동은 세상을 포근하게 합니다. 또 겨울입니다. 또 어려운 이웃을 말합니다. 바삐 살다 보니 다들 잊고 지냅니다. 백날 그래 봐야 찌든 가난이 꿈쩍이나 할 것 같냐고 묻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작은 나눔은 기적의 부싯돌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달부터 어려운 이웃들과 그들에게 사랑의 불꽃을 전하는 봉사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너와 내가 비벼 겨울이 따뜻해지도록.
“추위에 눈까지 내리는데 그놈의 가난 때문에 월셋방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서울에 함박눈이 제법 내린 지난달 30일. 남들이 올 겨울 들어 사실상 처음 내리는 눈발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이 불우이웃을 위해 이사 봉사를 하는 트럭운전사 이익회(63)씨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궂은 날씨에 이사해야 하는 어려운 이웃 걱정 때문이다.
이씨는 9년 전부터 혼자 사는 노인, 소년ㆍ소년 가장, 기초생활수급자 등 어려운 이웃의 이삿짐을 무료로 날라주고 있다. 그동안 100가구가 넘는 불우한 이웃들이 이씨의 도움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는 9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한다’는 원칙을 마음 속에 새겨왔다. 스스로‘사랑의 이사차’라고 이름 지은 낡은 2.5톤 트럭만이 이씨의 선행을 증언할 뿐이다. 그는 도움받는 사람에게도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이사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다 방에 들어간 뒤에야 이삿짐이 옮겨진 것을 알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인데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이씨는 남몰래 해 온 선행이 알려지는 게 부끄럽다며 수줍게 웃었다.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던 이씨는 서른에 서울에 올라와 건설현장을 전전했다. 20년 전 작은 트럭을 마련한 이후에는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왔다. 팍팍한 삶 때문에 남의 가난에 신경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하던 그를 헌신적인 봉사자로 바꿔 놓은 것은 1997년 여름 밤 TV 뉴스였다. “홍수로 집을 잃고 갈 곳이 없어 한숨짓는 사람들의 쓰디쓴 사연을 TV에서 봤어요. 그나마 남은 살림살이라도 어딘 가로 가져가야 하는데 옮길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더라구요.” 가진 것은 트럭 한 대뿐이고, 할 줄 아는 게 운전뿐인 그는 곧바로 트럭을 끌고 어려운 사람의 이사를 돕기로 했다.
이후 이씨는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이사를 해 주고 있다. “이삿짐 화물차 한 대 부르는 값이 10만원 가까이 됩니다. 그 돈이 없어 이사를 못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요즘엔 서울 서초구 사회복지사들이 이씨의 정보원이다. 이씨의 이사 봉사가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해 주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전화를 걸어오면 그는 하던 일을 제쳐 두고 사랑의 이사차를 몰아 현장으로 출동한다.
이씨는 지방에 있어 이삿짐을 날라줄 수 없으면 이삿짐 센터에 연락해 짐을 옮겨 주도록 한다. 이 비용이 1개월에 20만~30만원이 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씨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1개월에 200만원 조금 넘는 수입으로 부인과 아들까지 세 식구가 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아들이 PC방을 한다면 사채를 끌어 쓰다 7,000만원 가까운 빚을 졌다. 1년 넘게 빚을 갚다 결국 3,000만원을 못 갚아 며칠 후면 3년 전 마련한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야 할 판이다. 그래도 이씨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부지런히 뛰면 돈은 다시 모을 수 있잖아요.”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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