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신당은 지역당’ 발언과 이를 정면 비판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반격으로 당청은 결별 수순에 돌입했다. 1일 열린우리당 내에선 “이혼 도장을 찍는 것을 선택할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제는 통합신당파와 친노(親盧)파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헤어질 것인가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거론되는 결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지만 통합신당파에도 상당한 구심력을 갖춘 지도자가 거의 없는데다, 친노세력의 힘도 많이 약해졌기 때문에 정계개편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신당파가 탈당하는 경우
여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당파가 탈당해 제3지대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신당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신당파가 친노파만 남겨두고 당을 떠나 민주당, 고건 전 총리 세력 등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경우엔 통합 추진의 장애물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민주당이나 고 전 총리측에서는 친노를 배제한 통합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좀더 자유롭게 통합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 벽이 많다. 우선 명분을 얻기가 쉽지 않다. 신당파의 한 비대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이 신당의 명분인데 탈당을 한다면 명분을 오히려 친노파에 빼앗겨 버릴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굳이 창당 명분을 찾자면 ‘급진 개혁 세력을 제외한 중도 개혁세력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국고보조금에서 많은 손해를 보는데다 창당 자금을 마련하는데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비례대표 의원(23명)들은 탈당할 경우 자동적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에 탈당 대열에 동참할 의원이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는 부담도 크다.
친노파가 탈당하는 경우
노 대통령이 친노파를 이끌고 당을 나가 신당을 만드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이 낮다. 당장 친노파 의원들은 “나가려면 신당파가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노파가 신당파에 밀려 나가는 상황이 아닌 한, 스스로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친노파 입장에선 탈당까지 무릅쓰고 노 대통령을 따라갈 원내 의원이 생각보다 적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결국 창당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도 당에 남아 ‘우리당’ 이름을 지키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신당파 입장에선 친노파가 탈당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결별 시나리오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불안한 동거 후 전당대회에서 대결하는 경우
결국 신당파와 친노파 모두 각자의 부담 때문에 어느 한쪽이 나가지 않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 중진의원도 “아무리 싫어도 위험 부담이 큰 탈당을 어느 한쪽이 결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엔 내년 2월께 전당대회에서 양쪽이 한판 대결을 할 수밖에 없다.
신당파는 전당대회에서 통합신당론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고, 친노파는 이를 극렬 저지할 것이다. 만약 신당파가 승리한다면 친노파를 당에서 밀어낼 명분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당내 이전투구는 극심해지고 민심은 여당에서 더 멀어질 것이다. 양측의 충돌이 지속되는 와중에 신당 추진 동력이 약해질 우려도 있다.
친노파인 이광재 의원이 이날 “김근태 의장의 지도력에 한계가 왔다”며 의장직 사퇴를 주장하고, “신당 논의도 전당대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의석 수 대결 측면에서는 신당파가 우세하지만 친노파의 결집력이 더 크기 때문에 전당대회가 열린다면 어느 쪽이 승리할 지 장담할 수 없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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