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포스텍 20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포스텍 20년

입력
2006.12.01 23:47
0 0

구체적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생명공학(BT) 나노공학(NT) 환경공학(ET) 정보기술(IT) 신소재공학 등이 우리 미래의 삶과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첨단분야라는 것쯤은 이제 다들 안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이들 분야의 기술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은 원자, 분자 단위로까지 내려가는 극미(極微)의 세계를 다루는 실력이다. 뭔가를 다루려면 일단 대상물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부터 봐야 하는 법. 드넓은 포스텍(POSTECH·포항공대) 캠퍼스를 조망하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가속기연구소가 바로 이를 위한 '마술의 눈'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쨌든 이 곳의 방사광가속기는 그 밝기만 해도 대략 태양광의 10억배에 달하는 가공할 빛을 만들어 냄으로써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극미세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눈 앞에 드러내 보여준다.

병원균의 단백질구조를 밝히고, 미세물질의 원자결합구조를 분석해 내며, ㎜단위의 초소형 로봇을 개발하는 일 등이 가능해진 것도 이 덕분이다. 포스텍에서 매년 1,000편 이상 논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런 연구성과들은 상당수가 곧바로 의료, 전자 등 미래산업의 경쟁력으로 전환되고 있다.

▦포스텍이 3일 개교 20년을 맞는다. 그 짧은 기간에 이뤄낸 성취는 경이적이다. 여러 지표를 통해 이미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임을 거듭 공인받고 있거니와, 해외에서도 당당히 내세울 만한 명문공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박태준 포스코 창업주와 고 김호길 초대총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국내 대학들이 초라한 교육인프라 속에서 고만고만한 키재기나 하던 무렵에 지방 소도시에 대학을 신설하면서 감히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대)이나 MIT(매사추세츠공대)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호기(豪氣)였다.

▦교수 연구원 학부·대학원생 통틀어 500명도 안 되는 인원을 위해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수천억 원의 기업자금을 쏟아 부어 캠퍼스시설과 연구환경을 갖추고, 더욱이 최선진국에나 몇 개 있던 방사광가속기 설치를 추진한 것은 보통의 스케일과 시야가 아니었다.

영일만 황량한 모래펄에 모두가 냉소하던 제철소 설립을 강행해 마침내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포스코 신화의 학문적 재연이었다. 포스텍 20년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살아온 그 낭만적 모험가시대의 거대한 꿈과 의지, 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농축돼 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