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서거 5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한국 연극 축제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연말 배우협회가 올리는 <코카서스의 백묵원> 을 남겨둔 가운데 예술의 전당이 자체 제작한 <서푼짜리 오페라> (사진)가 공연중이다. 서푼짜리> 코카서스의>
무대는 거대한 교각 아래 음습한 런던 암흑가. 도시의 네온사인과 아파트를 원경으로 깔고, 오늘 서울의 밤거리를 겹쳐 놓았다. 연극은 이 공간을 사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좇고 모든 것이 상품화한 강도의 질서, 약탈의 질서로 유지되는 시민사회’(드라마투르기 정민영)를 비유적으로 다룬다.
시민계급의 동정심과 도덕성을 자극해 돈을 버는 피첨. 딸 폴리가 강도이자 뚜쟁이인 ‘신사’ 매키스와 도둑 결혼식을 치르자 그를 없애기 위해, 먼저 그를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비리 경찰의 비호를 받던 매키스는 교수대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진짜 인생에선 말이죠. 절대 나타날 리 없는…” 여왕의 사절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출동하면서, 결말은 해피 엔딩!
운명의 변화를 다루고 인물들 간의 욕망을 충돌시키며, 청중의 삶에서 결여된 어떤 것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구성물이 서사라면 브레히트는 관객 일반이 선호하는 ‘해피 엔딩’을 그대로 따르는 척 한다. 그러나 그는 행동과 실천을 통한 변혁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해피 엔딩의 신화 속에 안주하려는 시민 계급의 욕망을, 장기적인 분노와 의문을 불가능하게 하며 계급 사회의 여러 모순들이 해소된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해피 엔딩의 정치학을 폭로하고자 했다.
독일에서 온 연출가 홀거 테쉬케는 속도감과 유머, 그리고 현대적 감각으로 시종일관 탄력 있게 공연을 이끌었다. 다만 그가 놓친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형이다. 제목이 의미하듯 ‘서푼짜리’ 하위 문화의 패러디가 가능하려면 ‘돈푼짜리’ 고급 문화의 허위성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양과 위선으로 치장한 중산층의 문화적 향유가 튼실히 존재해야 한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이 화려한 볼거리와 말초적 재미만 좇는 전 계층의 문화적 편식과 몰두 속에서, 그 패러디물이란 정치적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이 연극에 담긴 재미와 활력은 브레히트가 품고 있던 모순에서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르주아 특권층의 여흥 거리인 오페라를 통렬히 조롱하면서 한편으로는 재즈와 갱스터 무비, 남근 찬양적인 영웅담 등 대중문화적 요소에 매료되어 있던 브레히트…. 쓰디쓴 정치적 메시지를 감싸고 있는 당의정 맛이 너무도 강력한, 역설이 담긴 연극이 ‘서푼짜리 오페라’이다. 12월 3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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