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에서 진행된 북미 접촉은 북한 핵 폐기의 이행 논의가 총론에서 각론으로 옮겨간 사실상의 6자 본회담이었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30일 “북한 핵 폐기의 첫 단계에서 북한이 취할 조치들을 미국이 정식 제기했다”며 북미 접촉 성격을 이같이 규정했다. 미측 제안을 받아 든 북한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이 경우 정식 회담이 열려 주고 받기 협상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던진 제안은 종전과는 달리 전향적이다. 하노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된 안에 기초한 미측 제안은 ‘새로운 안’이라 할 수 있다. 한 소식통은 “제안 내용 일부는 언론에 나왔을 수 있지만 제안 형식으로는 처음이어서 새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을 포함한 안보협력과 상응하는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며 제안의 일단을 비쳤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이번에 핵 폐기 1단계로 북한이 영변 원전 및 관련 핵 시설의 가동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 수용 등을 실행하면 상응하는 경제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본격 논의 등 가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했다. 미측은 농축우라늄 시설, 핵 실험 시설 등 관심 사찰대상을 언급하면서 북미 관계정상화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제안은 1년 전 6자회담 교착 당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미측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물론 북미 관계 정상화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즉 북미 적대 관계의 청산 없는 핵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최근 부시 정권은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동원 가능한 대부분의 카드를 써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 당국자는 “하노이 등에서 부시 대통령의 태도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미측 태도가 바뀌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측의 핵 폐기 1단계 안에 확답을 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진짜 바뀌었는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진행된 남북 접촉에서 김 부상은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게 미국의 정책변화를 묻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천 본부장은 “이번이 좋은 기회”라며 “의심하지 말고 방법을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미측 제안을 받고 진지한 검토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 해제 요구 카드로 미측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과연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바뀌었는지 여부를 다각적으로 검토한 뒤 부시 정권과의 협상이 가능한가라는 북한의 근본적 회의에 결론을 낼 것이다.
한 소식통은 “미국의 카드를 북한이 수용할지, 어느 정도 수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이에 따라 회담의 진도 등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검토결과이지 회담 재개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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