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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심리적 지체에 빠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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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심리적 지체에 빠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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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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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학생운동권 출신 친북 비밀단체 ‘일심회’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이 달 중순 수원지검은 박모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2003년 한달간 북한에 머물며 국내 군부대와 미군기지 위치 등을 알려준 게 주된 혐의다. 위법 사실은 알겠는데 군부대 위치 따위가 대단한 국가기밀인지 갸우뚱했다.

경찰청이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강모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친북ㆍ반미단체의 동향 등을 수집해 넘겼다고 한다. 강씨는 1994년 ‘김일성 조문기도’ 사건과 관련해 간첩죄로 4년6월 형을 받는 등 거물급이라지만, 역시 76세 고령으로 이렇다 할 조직과 돈도 없는 그가 어느 수준의 친북 활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들의 이적 행위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더욱이 국가안보에 관해서는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따져보자. 김승규 전 국가정보원장이 ‘충격적인 간첩단’이라고 말하면서 메가톤급 파장이 예고됐던 일심회 사건은 지금 소강 상태다.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한 386 인사 등의 관련설도 있지만 파괴력은 약해 보인다. 당국이 개별적인 ‘간첩’ 혐의는 확보한 상태지만 일심회라는 ‘단’(團)으로 묶을 단서나 정황은 아직 없거나 부족하다는 게 이 사건에 대한 대체적 분석이다.

간첩단의 최종 목표는 국가 전복(顚覆)에 있다. 하지만 이 사건 피의자들이 국가를 뒤엎을 만한 조직을 갖췄다거나 주요 기밀을 북한에 빼돌렸을지는 의문이다. 사석에서 우연히 얻게 된 정보나 한다리 건너 전해들은 기밀급 이야기와 소문 등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제공한 정도라는 시각이 많다.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이 사건에 대해 섣불리 예단하는 건 곤란하다. 다만 피의자들의 ‘대북 문건’에 포섭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변호사와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연루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 내 요직에 포진해 있는 386 인사들은 대남 공작의 주요 대상이고 이들 중 일부는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물론 386 인사 중 상당수는 주체사상에 빠지고 체제를 부정한 적이 있다. 또 80년대 후반 대학가에선 주사파가 학생운동의 주류였기 때문에 포섭 대상은 수두룩하다. 그러나 20년 전 일이다. 대부분 불혹을 넘긴 지금도 체제를 부정할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공과(功過)는 논외로 치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피의자들은 왜 ‘간첩’이 됐을까. 이와 관련해 주사파의 핵심이었던 한 인사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그는 “이들은 상당한 ‘심리적 지체’ 현상을 겪고 있거나 과거의 향수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실제 구속된 모씨는 술자리에서 학생운동 당시의 활약상을 자주 꺼내는 등 지난날에 상당히 집착했다. 군사정권 아래서 목숨 걸고 싸운 20대 젊은 투사의 이미지에 갇혀 살아왔다는 뜻이다.

세상은 한참 변했는데 심리적 지체에 빠진 사람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걸핏하면 못해 먹겠다는 대통령이나 준항고 등 어려운 말을 써가며 싸워대는 검찰과 법원의 행동도 국민 눈에는 심리적 지체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사사건건 정쟁에 휩싸이는 여야나 해묵은 색깔론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좌와 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이종수 사회부 차장대우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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