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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겨울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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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겨울 초입

입력
2006.11.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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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와도 별로 안 춥네." "그러게, 추워질 줄 알았는데." 젊은 아낙 넷이 재잘대며 계단을 내려간다. 두툼한 겉옷 단추는 채우지 않았지만 다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듣고 보니 과연 춥지 않아 나는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새벽부터 온종일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다. "저것 봐. 저렇게 깎아놓더라고.

철사도 치던데?" "그래도 되는 거야?" "자기 집이 그 앞인가 봐." "파, 배추, 별의별 거 다 심어놨더라." "그래도 되는 거야?" 아낙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본다. 소꿉처럼 둘러쳐진 울타리가 계단을 굽어보고 있다. 나무토막 모양으로 구운 찰흙기둥 울타리.

그 너머에 자투리땅이 있나보다. 또래로 보이는 아낙들은 동네이웃 사이일 터. 어디 가는 길일까? 나들이차림은 아니다. 저녁 일곱 시. 이른 시간이지만 어두워진 지 오래. 식구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나왔을까? 계단을 다 내려온 뒤 나는 그녀들을 까마득히 잊는다.

은행잎들이 보도블록을 덮고 있다. 어떤 곳엔 수북이 쌓여 있다. 젖은 낙엽을 밟고 걸으니 숲 냄새가 난다. 나는 깊이 냄새를 들이켠다. 오래 묵은 햇것. 싱그럽고 싸한 겨울 초입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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