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 남자의 치장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취업면접을 위해 성형수술대에 오르고 피부관리를 받는 것과 달리, 장신구 착용은 그 존재의 노골성 때문에 보통남자들에게는 여전히 금단의 영역으로 남는다. 전자가 취업 혹은 성공이라는 절대목표에 봉사하는 기능을 앞세워 가볍게 면죄부(?)를 받는 반면 후자는 근대이후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장식의 욕구, 곧 자기표현과 쾌락의 욕구에 휘둘렸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남성의 장신 욕구는 남성성에 위배되는가. 남성다움을 규정하는 일관된 잣대란 존재하는가.
남성과 장신구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들여다보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남자를 위한 장신구’전 이다. 쇳대박물관과 젊은 금속공예작가들의 모임인 알케미스츠 공동주관으로 1~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쇳대박물관 전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남성을 위한 장신구와 패션용품만으로 구성된 국내 첫 전시라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참가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패션디자이너 서상영과 서정기, 아티스트 한젬마와 금강제화 핸드백디자이너 오은주, 금속공예가 리사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 부인과 전용일, 건축가 황두진 등 모두 77명으로 직업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덕분에 장신구 마다 남성을 보는 각양각색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전시기획자인 국민대 금속공예과 전용일 교수는 “최근들어 남성용 화장품이나 패션상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남자를 보는 문화적 사회적 시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는 장신구를 통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남성성을 탐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선 넥타이나 커프스링크 등 전통적인 남성장신구를 아티스트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서상영의 밧데리를 활용한 커프스링크는 교양있는 ‘의전(儀典)’의 한 형태였던 커프스링크의 착용을 개인적 취향과 환경보호에 대한 슬로건으로 바꾼다. 이대창의 금속넥타이는 차갑고 강인한 이미지로 현대적 남성을 표현한다.
장신구의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두번째 부류다. 채신일의 테라피용 빗은 순은으로 만든 머리빗. 금속이지만 미니멀한 디자인에 따뜻한 촉감은 주머니속의 완구처럼 휴대의 즐거움을 주고 지압효과도 갖췄다. 김은주의 꽃 브로치는 메트로섹슈얼의 대명사였던 꽃프린트를 모피프로 한 것으로 브로치라는 가장 여성적인 형식이 남성에게도 썩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인다.
세번째는 장신구를 통해 남성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화를 드러내고 풍자하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무방할 작품군. ‘명예를 추구하는 남자를 위하여’라는 작품명이 붙은 이광선의 브로치는 ‘國’자가 선명한 국회의원 뱃지에 후광을 입힌 듯한 작품으로 권위와 명예욕에 압도당하는 한국남성들의 내면을 슬쩍 엿보는 기분이다. 양혜진의 손가락 걸개는 광고가 섹시하고 터프한 남성의 매력을 강조할 때 흔히 보여주는 포즈, 즉 청바지 앞주머니에 엄지 손가락을 슬쩍 걸친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장신구가 남성의 성적 매력에 어떻게 종사할 수 있나를 보여준다.
오미화의 ‘못이 되어버린 고추’라는 이름의 목걸이는 아들이 태어나면 걸었다는 금줄에서 착안했다. 남성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던 붉은 고추가 또 다른 성에게(혹은 그 자신에게조차) 대못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남성중심주의 사회를 풍자한다.
남자와 장신구가 어울리지않는다는 편견은 따지고 보면 19세기 서구의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장신구는 남녀의 차이보다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는 데 쓰였고 주술적 종교적 의미를 갖춘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시대 서구 부르주아적 취향은 신사의 태도로 근면과 검소를 요구했고, 대신 아내와 자녀를 장식함으로써 부와 지위를 과시할 수 있게 했다.
공예디자인 평론가인 이수목씨는 “장신구에서의 남녀차별(?)은 기껏해야 19, 20세기적 현상이었을 뿐인데도 그동안 너무나 쉽게 남성들의 치장욕구와 자유로운 표현수단을 제한해온 것은 아니었나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출품된 작품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장 판매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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