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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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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압정

입력
2006.11.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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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작은 창이 있다. 커튼 없는 맨 유리창이다. 압정 두 개면 거기를 빛 고운 닥종이로 가릴 수 있는데. 서랍 안에 압정들이 흩어져 뒹구는 광경이 눈에 선하지만, 그건 옛날 옛적 서랍이다. 지금 내 서랍에는 압정이 없다. 대신 스카치테이프가 있다. 무언가 간단히 임시로 붙여놓을 때 스카치테이프를 쓴다. 압정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깔끔하고 야무진데.

국어사전에서 '압정'을 찾아보니 '손가락 끝으로 눌러 박는, 대가리가 크고 납작한 짧은 쇠못'이라고 나와 있다. 대가리가 뭐야, 대가리가. 사전에서 대가리를 찾아본다. '<머리> 의 속된 말' '짐승의 머리' '길쭉하게 생긴 물건의 앞부분이나 꼭대기'다.

그러니까 대가리는 짐승과 물건을 의인화해서 비하한 말이다. 아닌가? 대가리란 말이 따로 먼저 있었고, 그걸 사람에게 쓰면 속어가 되는 건가? 어쨌든, 사람의 격을 높인다고 짐승과 물건에 상스런 말을 따로 만들어 쓰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반짝반짝 머리 큰 압정. 그림이나 생활 계획표를 붙였다 뗄 때, 데굴데굴 굴러 책상 밑에 숨고 방바닥 멀리 달아나기도 했지. 그 압정 밟아 발꿈치에 박히면 비명, 비명 지르며 펄쩍 뛰었지.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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