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 임명 파행 사태가 그간 한나라당의 국회 본회의장 단상점거 등으로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지속되더니 끝내 전효숙 전 재판관의 결코 자발적이지 않은 소장 후보 사퇴선언이 행해졌다. 본인의 거취가 그간 정치권에서 빅딜협상의 카드로 회자된 데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이자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의 최종적 교정자인 헌법재판소의 장이 공석이 된 지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공석에 따른 합헌적 절차를 진행해야 할 의무를 진 국회에서는 '그들만의 연례잔치'인 국정감사가 진행됐을 뿐이다.
착잡하다. 과거 정권과 민주화된 현 정권에서 예나 지금이나 야당의 단상점거, 여당의 강행통과가 되풀이되는 의회정치의 파행은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후진적인 정당정치 자체의 문제이다.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않는 한 진보적 노정치학자의 지적대로 정당정치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헌재소장 임명절차상의 위헌성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지만, 이후 주장되는 합헌적인 절차를 다시 밟고서 국회는 헌법상 부여된 권한과 의무대로 임명 동의를 위한 표결절차를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소위 떼법이 헌법 위에서 헌법을 지배하는 위헌적인 정치파행은 심히 유감스럽다. 몇 해 전에 전효숙 전 재판관이 헌법재판소 최초의 여성재판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여야와 언론이 보여준 환영과 기대감을 기억한다.
또한 필자는 전효숙 전 재판관이 재직 중에 결정문들의 행간 속에 담아내온 진지한 고민을 읽어오면서,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 대해서는 별도로 의문부호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사안에 의견을 달리한다고 해서 전효숙 전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소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들이 집중적으로 거론한 정치적 중립성 의혹 시비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왔다.
혹자는 전효숙 전 재판관 본인이 불운한 탓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재판관이 되었다거나, 최초의 여성 헌재소장으로 임명되는 데는 아직도 이 땅의 남성 중심의 마초집단으로부터 거부되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놓여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지지율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힘없는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권력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용퇴하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과연 누가 권력에 연연하고 있는지 그리고 권력 자체만을 위해서 권력에 온갖 흠집을 다 내면서 이 국가를 마치 대안 없는 무정부상태로 몰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적반하장 격의 주장이다.
독일에서 수십년간 몸담았던 중앙정치무대를 떠나며 어느 정치인이 던지고 간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정치는 더러운 거래다." 아무리 정치가 거래라고 하여도 한 인격체를 희생양으로 삼는 야만적인 행태는 그 자체로 문명의 후퇴이자 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더러운 거래다.
어느 사회건 간에 보수세력이 합리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사회 내 모든 권위의 부정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합헌적인 표결 절차를 진행해서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력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왔다.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권인숙'이라는 이름이 고 조영래 변호사의 표현대로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될 억압적 국가폭력의 상징코드였듯이, 앞으로 '전효숙'이라는 이름은 정치적 야만성의 상징코드로 그리고 시대의 빚으로 내내 기억될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대 교수ㆍ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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