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착좌 후 이슬람 국가로는 처음으로 터키를 방문 중인 베네딕토 16세가 종교와 종파를 초월하는 화해의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방문 이틀째인 29일 7,000만 인구의 99%가 무슬림인 터키 내 소수계인 기독교인을 포용하는 데 일정을 할애했다. 교황은 수도 앙카라를 떠나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곳으로 전해지는 고대 기독교 유적 에페수스에서 터키에서의 첫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가톨릭 교황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1967년 바오로 6세와 79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세번째다.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신자 250여명이 참석한 야외 미사에서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 풍자 만평으로 분노한 무슬림에 희생당한 터키의 가톨릭 신부 2명을 기리며 "고난과 위험으로 시험 당할 때에도 기쁘게 찬송하자"고 터키 내 2만명 가톨릭 신자를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베네딕토 16세는 이스탄불로 발길을 돌려 정교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와 만났다. 전세계 3억명 정교회 신도의 정신적 지주인 바르톨로메오 1세와의 만남은 1,000년에 걸쳐 이어진 가톨릭과 정교회의 틈새를 메우고 갈등을 치유하는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터키에서 베네딕토 16세는 9월 자신의 이슬람 폄하 발언과 마호메트 풍자 만평 사태로 더욱 골 깊어진 이슬람권과 서방 기독교계의 반목을 푸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교황의 터키 방문은 환영 분위기는커녕 테러 위험이 높아져 삼엄한 경호 속에 이뤄지고 있다. 교황은 이슬람을 폭력의 종교로 규정한 발언에 대해 공식사과까지 했지만, 수십만의 터키 무슬림들은 교황 방문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무슬림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교황도 터키에 도착한 28일 터키 이슬람 최고위 성직자인 알리 바르도코글루 등 이슬람계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알리 바르도코글루는 "이슬람이 전도를 위해 칼을 사용했다는 믿음과 점증하는 이슬람 공포증은 모든 무슬림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하며 감정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방문 연설에서 7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앙카라 연설과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유일신을 믿고 있기에 이슬람과 기독교인들은 서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11세기 교황 그레고리 7세의 말을 인용하며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정신적 뿌리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터키 내 소수계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슬림과 같은 종교적 평등을 누리게 해 달라는 말은 "종교의 자유는 중요하다"라는 말로 대체됐다.
무슬림들을 달래기 위해 종교적 수사 외에도 정치적 수사도 잊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했으나 이번 방문길에는 입장을 바꾸어 EU 가입 지지라는 깜짝 선물을 들고 왔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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