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한나라당의 출범도 요란했던 '참정치'의 결말을 보며 내뱉는 탄식이다.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정당정치가 총체적으로 와해될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에라도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 남의 티만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못봐
정치권은 대권이다 정계개편이다 하면서 새로운 집짓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이 서 있는 지반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지지율이 10%도 채 안 되는, 예를 찾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민주당은 해체가 예고된 여당보다도 더 빨리 해체될 징조마저 보이고 있다.
정치개혁을 염원하던 국민들로부터 민주정당의 모범사례로 사랑을 받던 민주노동당마저 친북 혐의의 덫에 걸려 국민들의 냉소와 무관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렇게 다른 정당들이 와해되어 가는 가운데서도 한나라당만은 40%대를 훌쩍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쟁자는 모두 무너지는데 한나라당만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듯이 보이기도 한다.
또, 당내의 분란으로 지금의 대오만 흩뜨리지 않는다면 대선 승리가 어렵지 않을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계산에서인지 한나라당은 국민들을 적과 아로 나누는 발언을 했어도, 뇌물을 받았어도, 다수 여성의 공분을 사는 행위를 했어도, 모두 끈끈한 동지애로 감싸 안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139석의 의석으로도 10%의 지지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 50%를 넘는 지지율에서 10%도 안 되는 지지율로 추락하는데 2년도 채 안 걸렸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고 자기들 눈의 들보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이 정당정치의 틀이 와해되어 가고 있는 상태에서는 한나라당이 설사 집권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혼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국의, 각계각층의 민의가 정당이라는 수로를 타고 한 곳에 모여 민의의 바다를 이루게 하고, 민의의 바다에서 결정된 국가적인 의사결정이 다시 그 수로를 타고 전국 곳곳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로가 유실되고 막히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머리를 깎고, 고함을 치고, 그리고 피를 흘리고 있다. 애꿎은 경찰의 피해는 물론이고, 제2, 제3의 하중근씨가 예고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다면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안이 되고 있는 FTA 논쟁부터 국회로 불러들여 몇 달이고 밤을 새워서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야 한다. 전국이 시위장이 되고 있는 마당에 사진 몇 장 찍는 봉사활동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권이 바뀌면 부동산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눈치만 보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 이대로는 집권해도 혼란 못 벗어나
아울러 '이대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구멍 난 국가시스템의 보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의사결정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에만 맡겨두어서는 풀리지 않는 이슈들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하고 답을 내놔야 한다.
UCC(이용자 제작 콘텐츠)의 시대에 정치권이 모든 결정을 하겠다고 들고 앉아 허송세월하며 국민들만 갈기갈기 찢어놓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의 인사 전횡을 막을 장치는 무엇인지, 정당과 국회의 민의 수렴과 대변의 기능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답을 내놔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다음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정치자금법 정비에 나서야 한다.
김민전ㆍ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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