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은, 지난주 엿본 연설과 한가지로, 썩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형식이다. 개전선언 곧 선전포고는 선언의 그 일방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예다. 전쟁은 “다른 수단들을 통한 정치의 계속”(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이라는 유명한 정의가 있기는 하나, 개전선언은 외교라는 통상적 대화(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노력을 공식적으로 접고 이를 군사행동으로 대치하겠다는 한쪽 나라의 일방적 의사 표시다.
선언은 그러나, 개전선언에서도 보듯, 연설에 견주어 집단의사의 표현이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 개인들의 이름이 그 선언의 주체로 도드라질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공산당선언’(1848)의 저자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개인들이었지만, 이 선언의 주체는 이들 개인을 포함한 공산주의자동맹이었다.
선언의 서명자가 어떤 집단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도 한가지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1955. 정식 이름은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에는 선언에 제 이름을 포갠 두 지식인 외에 유카와 히데키,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등 9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서명했다. 선언의 명시적 주체는 11명이었지만, 이들은 반전 반핵 평화진영의 과학자 집단을 대표해서 이 선언을 했다고 봐야 할 테다.
이렇게 제 이름을 선언 이름으로 만든 개인들이 어떤 이념 집단이나 의견 집단을 대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를 대표하는 경우도 있다. 그 선언의 주체가 (특히 고위) 공직자인 경우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각각 독립국가 수립의 기회를 주겠다고 (모순되게) 약속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을 뿌린 ‘맥마흔 선언’(1915)과 밸푸어선언(1917)의 주체는 각각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과 영국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라는 개인이었는데, 이들의 선언은 영국 정부의 입장을 담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입말을 통해 완성되는 연설과 달리, 선언은 문자 텍스트만으로 완결되는 일이 흔하다. 물론 기미독립선언(1919)이나 6.15남북공동선언(2000. 상자기사)처럼 글로 작성된 뒤 공적인 자리에서 낭독된 선언도 있고, 혼례식장에서 주례가 하는 성혼선언처럼 사람들 앞에서 읽힘으로써야 완결되는 선언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선언이 마무리되기 위해 꼭 입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작가 필리포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1909)은 파리의 일간신문 르 피가로에 실리며 완료됐고,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1924, 1929) 역시 활자화하는 동시에 완료됐다.
세계 주요 강대국의 국가수반과 정부수반을 수신자로 삼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나, 시오니즘 운동의 재정적 지원자였던 유대계 은행가 월터 로스차일드를 수신자로 삼은 ‘밸푸어선언’처럼, 편지 형식으로 이뤄진 선언도 있다. 아무튼 선언은, 그것이 출판물이 됐든 편지가 됐든, 문서 형식(선언문이나 선언서 또는 성명서)을 띠는 것이 예사다.
(사적인 선언은 입말만으로 완료될 수도 있다. 예컨대 연인이나 친구 사이의 절교 선언이 그렇다. 이 경우에도 물론 선언이 편지 형식을 띨 수도 있다. 양심선언 역시 입말과 글말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사적 선언의 예다. 공적 선언도 길이가 짧을 경우에는 입말만으로 완성된다. 어떤 행사의 개회 선언이나 폐회 선언이 그렇다.)
문자 텍스트로 완료되므로, 선언은 연설보다 한결 정제된 언어로, 세련된 문어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상의 선언문 가운덴 그 힘과 아름다움에서 모범이 될 만한 문장이 수두룩하다. ‘공산당선언’의 도입부와 마무리는 이 선언문을 완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또 이 선언에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선언은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낡은 유럽의 모든 세력이 이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교황과 차르가, 메테르니히와 기조가,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비밀경찰이”로 시작해 “지배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세계다.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로 끝난다.
일상어에서 “그건 선언적 의미밖에 없어”라는 표현은 어떤 말이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 맹탕 언어라는 뜻이다. 그것은 선언이라는 언어행위의 일방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상의 위대한 선언들은, 설령 그 즉시가 아니었을지라도, 뒷날의 법규범에 그 핵심 내용을 이식하며 구속력을 얻는 일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 선언의 내용이 보편적일수록, 그 핵심 메시지는 국경을 넘어 여러 사회의 법규범으로 수용됐다.
현대의 국제법과 헌법과 형법이 수용하고 있는 천부인권이나 주권재민, 법 앞의 평등, 죄형법정주의, 피의자 무죄추정원칙, 고문금지 따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깃발을 쳐들던 18세기의 미국독립선언(1776)과 프랑스인권선언(1789. 정식 이름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이미 명시되었다.
힘센 쪽에서 내놓는 선언의 내용은 선언 주체에게 진지함만 있다면 대체로 실현된다. 예컨대 한국의 독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카이로선언’(1943)에 “3대 연합국은,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해, 한국이 적절한 절차를 밟아 자유로운 독립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결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동력을 얻었고, 전쟁이 끝난 뒤 마침내 이뤄졌다. 카이로 선언을 낳은 카이로 회담에는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蔣介石) 등 당시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선언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암시하듯, (부당한) 현실이 바뀌기를 바라며 힘이 약한 쪽에서 내놓는 ‘희망의 피력’에 머무르곤 했다.
미국독립선언이나 프랑스인권선언도 그 선언이 이뤄진 시점에서는 부분적으로 약자의 선언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거니와, 20세기 이후의 유명한 선언들도 대개는 소수파의(소수파에 의하거나 소수파를 위한) 선언인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에 그 선언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현실과 유리돼 ‘선언적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 여성해방운동의 한 이정표가 된 ‘레드스타킹 선언’(1969)도 그랬고, ‘국제연합 아동권리선언’(1959)이나 ‘장애인권리선언’(1975)도 그랬다.
한국의 경우, 독재정권 시절의 민족민주운동은 ‘반파쇼학우투쟁선언’ ‘반제자주투쟁선언’ ‘구국선언’ 류의 문건을 수없이 낳았다. 대학교수를 포함한 기성 지식인 집단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종종 ‘시국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에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이제 구국선언이나 투쟁선언 따위의 시국선언은 정치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수구 보수 세력에게서 더 활발히 나오고 있다. 그 문구도 70~80년대 학생운동권의 선언문 못지않게 격렬하다. 그 거친 언어에는 자신들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조바심이 반영돼 있을 테다. 상상된 공포나 자기연민, 자기기만의 소산이긴 하겠지만, 이들 선언의 주체들은 자신을 이 사회의 ‘약자’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선언에 ‘선언적 의미’ 이상이 담기지 않게 될 때, 그것이 꼭 선언주체에게 힘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선언주체에게 힘이 있어도 진심이 없다면, 선언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담지 못한다. 이 경우에 선언의 아름다운 언어들은 그 주체가 마지못해 수행하는 립서비스일 뿐이다. 부패인식지수나 투명성지수가 유달리 낮은 한국 사회에서 이런저런 집단들이 주기적으로 내놓는 자정선언이 그 예일 것이다.
지난해 9월19일 6자회담 참가국의 차관급 대표들이 베이징에서 발표한 ‘6자회담 공동선언'(9.19선언)도, 미국 입장에서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심이 없어서 거의 휴지로 만들어버린 선언일 테다. 북한을 국제사회에 통합할 힘을 지닌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지금 미국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그럴 뜻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6.15 남북공동선언 전문(2000년 6월15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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