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했던 시절에의 아련한 추억,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회한, 그리고 굵은 눈물을 떨구게 하는 편지의 등장. <무지개 여신> 을 보다 보면 일본영화 팬들에겐 고전이 되다시피 한 <러브 레터>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한숨과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구조까지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획과 각본, 제작이 <러브 레터> 의 감독 이와이 순지(岩井俊二)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러브> 러브> 무지개>
속 깊은 이성 친구 아오이(우에노 주리ㆍ上野樹里)가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그러나 매사 어설프고 우둔하기만 한 도모야(이치하라 하야토ㆍ市原隼人)는 슬픔의 깊이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대학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무색무취한 그는 그저 덤덤하게 아오이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도모야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시계 바늘을 되돌려본 뒤에야 아오이의 빈 자리가 주는 커다란 상실감을 조금씩 인식한다.
<무지개 여신> 의 내용을 요약하면 ‘그 사람이 죽고 나서야 사랑을 깨달았다’는 것. 언뜻 줄거리만 보면 흔하디 흔한 최루성 멜로다. 죽음, 짝사랑, 추억이라는 쓸쓸한 단어가 극중 정서를 장악하는 것도 진부하다. 그러나 <무지개 여신> 은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는 과도한 감정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도모야와 아오이의 사연을 수채화풍 화면에 담백하게 채색하며 신파의 함정을 피해간다. 도모야가 뒤늦게 아오이의 연정을 눈치채고 가슴을 치게 되는 것처럼 관객들도 사랑의 설렘과 실연의 아픔이 엇갈리는 묘한 감정에 조금씩 젖어 든다. 무지개> 무지개>
일상에 부유하는 사랑의 감정을 절묘하게 순간 포착하는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특히 “우유부단한 점도 좋아. 끈기 없는 점도 좋아… 웃는 얼굴이 가장 좋아”라는 아오이의 진심이 담긴 편지가 공개되는 장면은, 쉬 잊혀지지 않을 이 영화의 절정이다. 구마자와 나오토(熊澤尙人) 감독. 30일 개봉, 12세.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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