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윤전기는 시간당 5만~6만부의 신문을 인쇄한다. 초당 15부 정도다. 신문인쇄의 핵심은 잉크와 물. 글자 사이사이 여백에 물을 뿌린 뒤 잉크를 분사한다. 기름성분이 많은 잉크가 물과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컬러일 경우 3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을 적절히 배합한다. 0.07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물과 3가지 잉크가 잇달아 분사된다.
물이 정확히 뿌려져야 하고, 잉크의 점성(粘性)과 유성(油性)이 적절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즉시 잉크가 마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점성이 강하면서도 서로 잘 섞이고, 곧바로 마른다니 신비롭다.
■ 헝가리의 신문기자였던 라슬로 비로(Laeszloe Biroe)는 윤전기 잉크가 금방 마르는 데 착안해 볼펜을 고안했다(1938년). 만년필에 윤전기 잉크를 넣으면 좋겠는데 강력한 점성 때문에 펜촉을 타고 흐르지 못했다. 공학도였던 동생의 도움으로 금속 볼이 달린 펜을 만들었고, 시간에 쫓겨 작성한 원고를 즉시 포장해 송고할 수 있었다.
형제는 반(反)유대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탈출, 'Biro'라는 이름으로 볼펜 특허를 취득했다. 영국이 특허권을 사들여 2차 대전 때 공군에 시범적으로 보급했고, 1946년 시판을 개시했다.
■ 모나미 그림물감을 생산하던 광신화학공업 송삼석(78)회장이 일제 볼펜에 감탄하여 일본 오토볼펜과 제휴, 1963년 5월 1일'모나미153'을 시장에 내놓았다. 이름을 공모하는 자리에서 한 직원이 "숫자를 넣자면 153이 최고"라고 했다.
화투를 좋아했던 그는 "1+5+3=9로서 제일 높은 끗발"이라고 말했으나, 송 회장은 예수가 가리킨 곳에서 베드로가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는 성경구절이 생각났다고 한다. 광신화학은 제품명으로 기업명이 바뀔 만큼 번창했고 성경구절처럼 '많은 고기를 잡아 올려도 결코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 그저께 BBC방송은 이번 주가 볼펜 시판 60주년이라면서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이동성과 신뢰성에서 압도적인 제품"이라고 평했다. 영국 공군은 잉크가 새지 않는 'Biro'로 목표물을 쉽게 표시하고 정확히 가리킬 수 있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가지고 다니기 편리해 전동차 문 틈에 볼펜이 끼는 바람에 운행이 중단되는 것과 같은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그 편리함은 60년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대입 논술에서 대부분의 대학이 볼펜으로 답안을 쓸 것을 의무화한 것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신뢰성 때문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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