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다. 국내선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이륙 후 승무원이 인터폰을 쓰고 나자, 옆 자리의 서양인 승객이 전화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승무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건 기내 인터폰이고 당연히 지상과의 통화는 안된다고 답했다.
나도 당연하다는 듯 잠시 웃었던 기억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후 사실 항공기 기종에 따라 그때에도 지상과의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내가 모르고 있는 많은 이유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취업에 대한 이야기와 병행하여 성차별 논란이 들린다. 항공기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데 항공기 승무원들에 대해서도 조건이 몇 개 더 따르는 것에 나 역시 부정적 의견을 가졌다.
그런데 얼마 전 관계자의 설명을 사석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서 만든 항공기이기에 승객 짐을 넣는 칸에 손이 닿으려면 키가 165㎝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서빙하기 때문에 팔에 큰 상처나 문신 등이 있으면 불쾌감을 주기에 반팔을 입고 면접을 볼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승무원의 면접조건이 이해가 되었다.
운전을 하면서 아주 짧은 터널, 지하차도 등을 지나는데 뒷차는 그 순간마다 매번 라이트를 켰다. 몇 번을 그러자 '왜 저토록 불 켜는 것에 연연해 하나' 하고 짜증이 조금 났다. 그런데 얼마 전 차를 바꾸고서는 평소 차의 라이트를 오토에 맞추어 두었더니 조금 어두워지면 내 조작이 아니고도 불이 자동으로 켜진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운전을 20년 하고도 이제야 알았다.
이미 아는 사실에 대한 리마인드 이외에는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없는 메일에 대해 답글을 보내지 못했다. 비서가 매일 아침 내 메일함을 확인하는데 특별한 내용이 없어 회신을 생략했다 한다. 그러자 상대가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감정적으로 다시 보내온 메일을 밤 10시에 피곤한 눈으로 대하는 순간 지친 몸이 더 가라 앉았다.
나 역시 그에게 '일방적으로 당신이 편한 시간에 보낸 메일에 내가 왜 반드시 답글을 보냈어야만 하느냐'고 맞받아쳤다. 물론 후회한다. 왜냐면 앞에 열거했듯이 그에게 내가 모르는 다른 경험과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일방적 판단으로 관계 망쳐서야
그 사람을 알려면 노름을 해보거나 여행을 함께 해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들 등 따습고 배 부를 때는 서로에게 잘한다. 이미지 관리 역시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자기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순간들 때문에 이미지도, 관계도 망치기 일쑤라는 점이다.
짜증도 많고 실망도 많은 시대이다. 새삼 커피와 사랑의 일치점을 견준 말이 재미있다. 둘 다 '처음엔 뜨겁고, 적당하다 싶은 순간은 잠깐이고, 이내 식어버린다'고 말한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좀 더 여유있는, 일정 온도의 일관성이 서로에게 아쉬운 시대이다.
이종선ㆍ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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