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100회 공연과 15만 관객, 예상 총수입 23억2,000여만원.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 성적표다. 이 정도의 관객 동원, 이 정도의 수입은 한국 오케스트라 사상 전무한 일이다.
정명훈이 지난해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영입되기 전, 서울시향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형편없는 연주 환경, 단원에 대한 열악한 처우, 공연 기획력 부재 등. 그런 서울시향이 지난해 6월 재단법인화와 함께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 단원 오디션이 실시됐다. '종신 단원'이나 다름없던 단원들의 반발이 컸지만 정명훈의 평가는 냉엄했다. 단원의 3분의 1 가량이 물갈이 됐다. 지금도 오디션은 계속되고 있다. 기존 단원, 영입 단원 가릴 것 없이 서울시향 단원으로 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정명훈의 부임 이후 서울시향에는 경쟁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명훈은 단원 오디션에 대해 "오직 실력으로 말을 하는게 음악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과거처럼 서울시향 단원이라는 배경을 업고 오케스트라보다 레슨 활동에 힘을 쏟는 단원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그러다간 단원직이 위태롭다.
지휘자의 성이 찰 정도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연습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정명훈은 마음에 드는 연주자가 없으면 그때그때 해당 파트에 외국 연주자를 불러 앉힌다. 자연스럽게 내부 단원간, 국내외 연주자간 경쟁이 이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서울시향의 수준이 과거보다 "10~15% 향상된 것 같다"는게 정명훈의 평가다.
KBS도 지난해부터 교향악단의 독립법인화를 추진해왔지만 단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있다. 그 와중에 먼저 재단법인이 된 서울시향의 성적표가 나왔으니 KBS 교향악단으로선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를 시장에 던져놓는 것만이 KBS 교향악단의 부활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 할 수 있을까.
국내 공연 시장은 오케스트라가 자립할 수 있을 만큼 비옥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다.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를 빼고는 공연 때 좌석 채우기도 힘들다.
독립법인화가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일거에 끌어올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서울시향의 변화는 정명훈이라는, 모두가 인정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BS에 과연 그런 리더십이 있을까. 다시 임기를 시작한 정연주 사장은 노조 반발 때문에 주차장 출구를 역주행해 출근하는 상황이다.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자리는 1년 11개월째 공석이다. 선장이 없으니 제대로 항해를 할 리 만무하다.
KBS 채널에는 2000년 이후 오케스트라가 참여하는 정규 방송프로그램이 한 개도 없다. 이러고도 공영방송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향악단의 독립법인화를 공연히 트집잡을 생각은 없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도 갖추지 못한 이런 상태에서의 독립법인화는 KBS 교향악단에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KBS가 교향악단의 독립법인화를 고집하기 앞서 시청자에 대한 문화서비스 정신을 회복하는 등 기본 토대부터 갖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상진 문화부장 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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