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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공지영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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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공지영의 상처

입력
2006.11.2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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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씨가 재테크, 처세술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출판계에서 고군분투하며 한국문학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 상처가 오히려 약이 된 걸까? 그녀는 한동안 자신에게 쏟아진 '운동권 상품화'라는 독한 비난에 충격을 받아 신경정신과까지 다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공씨의 상처에 가슴 아파하면서 최근 한 언론학자가 출간한 책을 떠올렸다. 그 학자는 '머리말'에서 '좌파 10년, 우파 10년'으로 보낸 자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다.

과거 진보적 언론운동단체에서 일했던 그는 자신의 변화 이유와 관련,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혁하자는 사람들간의 갈등'에 대한 환멸을 토로하면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메마른 좌파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같이 운동을 한 대학교수들의 처신은 어쩌면 개인적 '입신양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 운동권 상품화 비난에 충격

평소 어떤 분들에 대해 "개혁ㆍ진보를 열심히 외치지만 '인간이 없다'"는 생각을 해온 나는 그의 고백에 공감했다. '인간'이 없는 메마른 개혁ㆍ진보 담론은 자신의 출세나 인정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스티븐 룩스는 <마르크스주의와 도덕> 이라는 책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망친 건 '도덕'의 부재라는 걸 시사했는데, 마르크스주의건 개혁주의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강하거나 그런 열망으로 포장한 권력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인간적 도덕'이 결핍되기 쉬운 것 같다. 나도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자기비판을 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려 보겠다.

'인간적 도덕'이라 함은 정실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자기성찰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능력이라 해도 좋겠다. 물리적 폭력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 폭력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하기에 하는 말이다.

과거의 동지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는 법이다. 가학의 쾌감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면, 무엇보다도 상대편의 말과 글을 가능한 한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까지 하는 건 해선 안될 일이다.

"자신있는 자만 돌을 들어라"는 말은 보수 이데올로기로 악용될 수도 있지만, 그 참뜻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자신의 흠과 추태에 대해선 무한대로 관대할 뿐만 아니라 모두 좋은 뜻이었다고 미화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의 행태에 대해선 성난 얼굴로 비난만 해서야 쓰겠는가. 남들도 자신만큼의 지능과 선의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자세가 아쉽다 하겠다.

공지영씨의 상처 이야기를 하다가 멀리 나갔지만, 공씨에겐 장경동 목사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장 목사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 그의 아내는 이웃집 김장을 도와주러 갔다고 한다. 아내는 김장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일을 끝내고 내버려질 푸성귀나 가져가려고 했더니, 주인장 하시는 말씀이 "돼지 갖다 주려고 그래요?" 였다나. 아내는 이 사건을 먼 훗날에야 털어놓았다고 한다.

● 비판에는 자기성찰 앞서야

장 목사는 세 가지 교훈을 말했다. 첫째, 말을 조심하자. 둘째, 별 생각 없이 상투적으로 한 남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셋째, 말의 때를 알자. 공씨가 껴안을 교훈은 두 번째 것이다. 남의 비판에 개의치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담대하게 자신의 길을 갈 일이다(그러나 권력자는 그러면 안된다).

비판을 많이 하는 나같은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건 첫째와 더불어 세번째 교훈일 게다. 장 목사는 아내가 그 일을 즉시 말했더라면 자신은 돈 버는 길로 나섰을 것이라며 말의 때가 중요하다고 했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심사숙고와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을 익힌 다음에 발설해야 한다. 나는 그간 개혁ㆍ진보 담론을 이기적으로 사용해온 건 아닌지 새삼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된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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