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서당 훈장님이다. 곰방대가 있으면 당장이라도 입에 물고 혀를 끌끌 찰 것 같다가도 어느새 너털웃음이 터질 것 같은 익살스런 표정,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구수한 입담. 만화 <맹꽁이 서당> 을 그린 윤승운(63) 화백이다. 맹꽁이>
윤 화백의 역사 명랑만화 <맹꽁이 서당> 이 24년 만에 15권으로 완간됐다. 1982년 10월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창간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9년에 걸쳐 조선사를 다룬 이 만화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10권의 단행본(웅진주니어 발행)으로 출간됐다. 이후 잡지 <생각쟁이> 에 후속편인 고려사 부분이 올 9월까지 연재됐고, 대대적인 컬러화 개정 작업 끝에 고려 광종에서 공양왕까지를 다룬 15권이 출간되면서 24년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생각쟁이> 보물섬> 맹꽁이>
“내 작품은 만화적 요소가 많아서 고증에서 좀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20년 전만 해도 참고자료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공부하기 싫어하는 맹꽁이 서당 학동들을 붙잡아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려는 훈장님의 모습이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맹꽁이 서당> 은 잡지 <보물섬> 이 당시 어린이들의 핵심 문화콘텐츠가 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매회 옛날 얘기를 들려주듯 우리 역사를 설명해 주는 훈장님 덕에 지금의 30, 40대들은 맹꽁이 서당 학동들처럼 절로 역사를 배우게 됐다. 어른들에게 TV 대하사극이 있었다면, 어린이들에겐 <맹꽁이서당> 이 있었던 셈. 맹꽁이서당> 보물섬> 맹꽁이>
“지금도 30, 40대 학부모들이 반갑게 아는 척을 해요.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일본 만화에 길들여져 있어 걱정입니다. 내가 민족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어릴 땐 우리 것을 좀 봐야죠. 그 다음에 다른 걸 봐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처음부터 자극적인 일본 만화에 중독되면 우리 것은 고리타분하게만 여기니 안타깝죠.”
함경북도 종성 출신인 윤 화백은 19세부터 독학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40여년 만화 외길만 걸어왔다. “그냥 저 혼자 좋아서 그려보고 또 그려보고 그러다 만화가가 된거죠. 순수한 작가가 되려면 남의 밑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봐요. 자기가 좋아하는 세계를 그려야지 남의 물이 들어버리면 쓰겠소.” 기가 막힐 때면 X자로 돌변하는 눈, 지금은 이모티콘으로 흔히 사용되는 눈웃음( ), 화가 나면 뒤통수와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층 표시 등은 윤 화백만의 독특한 표현방식. 단순 곡선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친근한 캐릭터를 빚어낸 그는 역사만화뿐 아니라 <요철발명왕> <탐험대장 떡철이> 등으로 한국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탐험대장> 요철발명왕>
요즘은 문하생이나 직업 작가들을 고용해 파트별로 작업하는 분업식 제작이 일반화했지만, <맹꽁이서당> 은 1권부터 15권까지 윤 화백의 손만으로 그려졌다. “줄도 내가 치고, 그림도 내가 그리고, 지우개질도 내가 직접 했어요. 만화도 예술작품인데, 어떻게 자기 아이디어를 사람 사서 맡기나.” 맹꽁이서당>
<맹꽁이 서당> 과 작별한 후 “만화를 안 그려 요즘 아주 살 판이 났다”는 윤 화백은 경기 남양주시에 마련한 농장에서 각종 공구들을 이용해 이것 저것 만드느라 아주 바쁘다. “내가 장난이 심하고 주책 없는 성격이라 명랑만화가가 된 듯해요.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땅굴도 파고 이것 저것 만들고. 시간이 나면 천천히 사서삼경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볼까 합니다. 시간이 나면 말이우.” 맹꽁이>
박선영기자 aureov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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