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27일 청와대의 만찬 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는 게 김 의장 주변 인사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김 의장과 당 지도부가 사실상 청와대와 결별 수순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정국운영과 당청 관계 설정에 대해 그 동안 쌓였던 당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정계개편을 본격 추진하기에 앞서 노 대통령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를 고심하던 김 의장이 마침내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탈당을 건의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계기는 청와대가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여ㆍ야ㆍ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한 것이다.
김 의장은 이날 “25일 당정청 4인 회동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코 앞에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 청와대가 당과 한 몸으로 갈 생각인지, 아니면 거국내각을 구상하고 있는지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런데 불쑥 여ㆍ야ㆍ정 정치협상회의를 제안한 건 사실상 우리당을 여당이 아니라 청와대의 들러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한 고위당직자는 “지난달부터 우리당의 진로와 함께 북핵 문제, 부동산 대책, 전효숙 헌재소장 내정자 처리 문제 등을 논의하자고 4차례에 걸쳐 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한번도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며 “여당을 국정의 한 축으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비대위원도 “청와대가 지난해 대연정 제안에 이어 이번에도 당을 배제한 채 정치협상을 제의한 데 대해 지도부가 격앙돼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비대위원은 “의장 면담은 거부해놓고 40여명을 불러 또 강연을 하겠다는 데 우리가 바보냐”고 쏘아붙였다.
노 대통령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지명을 철회한 뒤에도 이 같은 기류가 달라지지 않은 게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당을 향해 시위하듯 아무런 상의 없이 또 일을 저질렀다”(의장 비서실 관계자), “이런 걸 두고 점입가경이라고 하는 것”(한 중진의원)이라는 비판과 냉소가 이어졌다.
당내 재야파 수장으로서 그 동안 노 대통령 배제론에 반대해온 김 의장이 등을 돌릴 경우 노 대통령과 여당의 고리는 친노 직계 의원 일부로 제한된다.
김 의장측은 향후 독자행보를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 고위당직자는 “부동산 대책과 자이툰부대 철군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 있어서도 청와대의 입장에 연연하지 않고 당론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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