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는 걱정스러울 만큼 작고 말랐었다. 다섯 살 때도 두세 살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성장을 돕는 환약을 구해 그 애 집에 갖다 놨었다. 하루 세 번 스무 알씩 삼키는 건데 제 엄마 힘으로는 잘 못 챙겨주는 것 같았다. 내가 어르고 달래야 억지로 삼키고 왈칵 토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를 좋아도 하고 무서워도 해서 내 말이라면 거역 못하는 어린애가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물을 몇 컵씩 마시면서 간신히 삼킨 약을 토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결국 고스란히 남은 그 약은 그 집 식탁 구석에서 유통기한을 넘겼다.
약값을 치른 나로선 그대로 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남산비둘기들에게 먹일 작정이었는데 깜빡 잊었다. 잊기 잘한 것 같다. 녹용과 녹혈이 함유됐다는데 그런 걸 비둘기가 먹으면 광구(狂鳩)병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그토록 말랐던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인 지금은 걱정스러울 만큼 뚱뚱하다. 여섯 살 땐가, 제 외갓집에 다녀온 뒤 이스트를 넣은 듯 부풀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무슨 보약을 먹였다나보다. 그 무렵부터 보기 심란할 정도로 많이 먹는데, 어린 것이 뚱뚱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덜 먹으려 애쓰는 게 안쓰럽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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