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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은 일하고 싶다/ <상> 고령자 실업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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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은 일하고 싶다/ <상> 고령자 실업 실태

입력
2006.11.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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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보다 나이가…" 눈물 젖는 이력서

50대와 60대를 일컫는 5060세대의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2001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2018년 고령사회(14%이상)를 거쳐 2026년 초고령사회(20%이상)를 맞는다.

고령자 실업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사회 각 주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미래에 엄청난 재앙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고령자 실업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사람 망가지는 거 하루 아침이데요. 나이 든 게 무슨 죄도 아니고….”

경기 안성시에 사는 김모(51)씨는 4년 전만 해도 잘 나가는 항공사의 기체 정비담당 엔지니어였다. 회사에서 나오는 공짜 항공권으로 1년에 한번씩 가족 해외 여행도 다녀오는 멋진 가장이었다.

김씨의 어깨가 처진 것은 회사의 구조조정 칼 바람에 명예퇴직을 한 2002년부터다. 그는 “나가야 할지 고민도 했지만 ‘이 회사 아니면 할 일이 없겠느냐’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상은 냉정했다. 경쟁 항공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허사였다. 기계 관련 다른 업체들에 이력서를 냈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이가 문제였다.

그렇게 1년 남짓 허송세월 한 끝에 선택한 게 트럭 사업주다. 화물차를 사서 물류회사의 용역을 맡아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는 “운전도 힘들었지만 고객들에게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며 중도하차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결국 4개월 뒤인 2004년 2월 이 일을 그만두었고 트럭은 원래 산 값의 절반에 팔아치웠다.

이후 그는 3년 가까이 실업자 신세다. 이곳 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모두 퇴짜다. “그 나이에 기름 묻히는 힘든 일을 버텨낼 수 있겠냐”는 조롱만 돌아왔다. 김씨네 집은 아내(48)가 대형 할인마트 계산원 일을 해 받는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1996년 0.6%에 불과하던 55~64세 고령자 실업률은 99년 외환위기 영향으로 4.5%까지 치솟은 뒤 2001년 1.7%로 진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다시 증가해 2005년에는 2.5%까지 올라 다시 상승세를 탔다. 구직자(55~64세)는 2002년 9만 명에서 지난해 13만9,000명으로 무려 40% 증가했다.

무엇이 5060세대를 실업자로 내 몬 걸까.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워크넷)에 등록된 구인ㆍ구직 통계를 보면 55세 이상의 일자리 경쟁배수는 17.67배였다. 일자리 1개를 놓고 17명의 고령자가 치열하게 다툰다는 뜻이다. 29세 이하 청년층의 경쟁배수는 1.93배였다.

고령자를 직업적으로 퇴물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과 “내가 왕년에…”라는 생각에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5060 실업자들의 적이다.

지방 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0년 정년 퇴직한 이모(64)씨는 6년째 놀고 있다. 처음엔 보수 등 조건이 안 좋다며 일자리를 거절했다. 2년 전부터는 낮은 월급도 괜찮다며 눈높이를 낮췄지만 계속 허탕이다. 그는 “사장보다 나이가 많다고 거절 당한 적도 있다”며 “나이 많다고 무조건 퇴짜를 놓지 말고 며칠만이라도 일을 시켜 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한숨 지었다.

기업들은 50대 초반만 돼도 조기 퇴직을 강요한다. 30,40대 때 ‘일벌레’로 능력을 인정 받은 사람도 50줄에 들어서기 무섭게 월급만 축 내는 ‘돈벌레’로 전락한다.

노동연구원 김동배 연구위원은 “나이 많을수록 돈을 많이 받는 현행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서는 고령자 1명이 나가면 젊은 사람 2,3명을 쓸 수 있다”며 “일정 연차 이후에는 고용을 계속하는 대신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 등 정년 연장과 고령자 고용을 위한 시스템이 조속히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 노무직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고령자와 중ㆍ장년 여성, 청년 실업자가 경쟁을 벌이는 것도 문제다. 청년 일자리 박람회에 고령자가, 고령자 취업 박람회에 중ㆍ장년 여성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김수원 교수는 “고령자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으로 채용 정보를 챙기고 유망 자격증을 따는 등 경쟁력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고령자 실업 재앙위기…

고령자 실업은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는 무기력증에 걸리고 성장 잠재력이 곤두박질 치는 등 엄청난 재앙에 빠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50년에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인구 10명 중 4명에 달하게 된다. 지난해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7.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0년과 2050년엔 각각 생산인구 2.7명,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연금 등 사회 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고령자에 대한 젊은 층의 부양 부담 증가와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성장 둔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국민연금은 현재의 수급 구조가 지속되면 2036년부터 적자가 나고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바닥날 전망이다.

노동연구원 김동배 연구위원은 “사회적 부양 부담 증가와 생산인구 감소라는 두 가지 압박을 최소화 하는 것이 고령사회 극복의 최대 관건”이라며 “정년 시기를 늦추고 취업 기회를 늘리는 한편, 국민연금 개혁도 조속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경영 측면에서도 고령자 실업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 노동수급이 균형을 이룬다. 2011년부터는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고령 인력을 활용하지 않으면 기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조만간 도래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기업들의 고령자 인력 활용은 매우 초보적이다. 경비, 주차관리 등 단순 노무직에 고령자를 고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동부 김태홍 고용평등심의관은 “나중에 일할 사람이 모자라 갑작스레 고령 인력을 쓰려면 기업과 고령자 양쪽 모두에게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며 “기업은 지금부터라도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무를 개발하고 인사관리ㆍ임금 시스템을 바꾸는 등 고령사회에 맞는 인력활용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고령자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기 쉽다. 삶에 대한 무기력증은 자살이나 가정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령자·노인 차이는

고령자와 노인은 법에 따라 다르다. 고용 분야에서는 고령자, 복지 쪽에선 노인이라고 한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고령자는 55세 이상, 준고령자는 50~54세다. 노인복지법에서는 65세 이상을, 국민연금법에서는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0세부터 노인으로 규정한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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