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인 앨런 소칼(미국 뉴욕대 교수)과 장 크리크몽(벨기에 루벵대 교수)이 쓴 <지적 사기(impostures intellectuelles·영어판 제목은 fashionable nonsense)> 는 과학에 대한 책이 아닌, 과학을 읽는 법에 대한 책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을 잘못 읽는 인문·사회과학자에 대한 통쾌한 비판이다. 지적>
저자들은 라크 라캉이 정신분석에 즐겨 사용한 위상학, 문학비평가이자 기호분석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언급하는 괴델의 정리, 과학철학자인 브루노 라투르가 분석한 상대성이론, 철학자인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유사 과학적 용어 사용 등을 자근자근 씹는다. 현대 사상을 주름잡은 이들에게 “모르면 가만 있으라”고 일침을 놓은 이들의 메시지와 글쓰기 스타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1998년 출간된 이 책은 탄생부터 센세이셔널했다. 소칼은 1996년 철학자들의 궤변을 끌어 모아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해석학을 위하여> 라는 논문을 써서 투고했는데, 내막을 몰랐던 미국 문화연구 저널 <소셜 텍스트> 가 이를 실어주었다. 얼마 후 소칼은 이것이 패러디 논문임을 밝혀 현학적인 말투에 젖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이를 확장한 책이 <지적 사기> 다. 지적> 소셜> 경계의>
저자들이 지적한 과학 오용의 사례를 들어보자. 난해하기로 이름난 라캉은 정신분석을 수식화하려 했다. “비합리적 감정은 직관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보존돼야 마땅한 ‘허수’”이며 “기표(S)는 -1로 기호화할 수 있으므로 S(기표)/s(기의)=s(진술)에서 s=(허수)가 된다”는 식이다. 소칼과 크리크몽이 보기에 이는 “어처구니 없을 만큼 자의적인 정신분석학과 수학의 연결”이며 ‘세속 신비주의’에 불과하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연구가 사회적이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라투르는 “상대성 이론의 함의는 2명의 서로 다른 관찰자(좌표계)로부터 정보를 취합하는 제3의 발언자가 특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투르는 좌표계 개념을 혼동했을 뿐 아니라, 상대성이론에서의 발언자는 단지 이론의 설명 방식이었을 뿐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여기까지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철학자 등의 엄밀하지 않은 용어사용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중요한 쟁점을 포함한다.
저자들은 과학의 오용과 남용을 통해 결과적으로 반과학적 인식을 퍼뜨린 학문적 조류를 문제 삼는데 바로 과학사회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다. 칼 포퍼, 토마스 쿤이 상대주의의 씨앗을 뿌린 원흉으로 지목된다. 여기서 과학을 보다 권위적으로 바라보는 과학자와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는 과학사회학자 사이의 시각차가 드러난다. 이 책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다. 이희재 번역, 민음사 발행.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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