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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친화 공동체를 찾아서/ <상> 호주 시드니의 '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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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친화 공동체를 찾아서/ <상> 호주 시드니의 '레츠'

입력
2006.11.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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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구제운동 ‘레츠(Local Exchange Trading System)’가 일하는 여성들의 가족문제를 해결해주는 가족친화 공동체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호주 사회에서 가정이 도맡았던 육아와 노인수발 등을 지역공동체가 함께 떠안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전업주부와 정년퇴직자 등 유휴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레츠는 캐나다의 마이클 린턴이 1983년 창안한 지역 대안화폐 운동이다. 당초 실업자들이 자신의 노동력과 기술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대안화폐를 받은 뒤,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제도로 출발했다. 이후 거래 품목이 탁아와 노인수발 등으로 확대되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도와주는 수단으로 각광 받고 있다.

레츠는 릴레이 품앗이 방식으로 운영된다. 예컨대 전업주부 A씨가 맞벌이 주부 B씨의 아이를 돌봐 주고,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B씨는 C씨에게 컴퓨터 디자인 기술을 가르쳐 준다.

또 요리 솜씨가 뛰어난 C씨는 파티를 준비 중인 D씨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이들의 거래는 진짜 돈이 아니라 회원들끼리만 통용되는 대안화폐로 이뤄진다.

호주는 레츠 운동의 메카로 꼽힌다. 한때 세계 최대 규모의 블루마운틴 레츠가 운영됐던 지역이다. 요즘엔 시드니 레츠가 대표적이다. 시드니 레츠의 회원은 가정주부, 정년 퇴직자, 회사원 등 총 200여명. 이들은 대안화폐 ‘오페라’를 사용한다.

거래 단위는 일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시간 당 20오페라로 고정돼 있다. 거래 품목은 건축, 외국어 교습, 마사지 등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뿐 아니라 아이 돌보기, 음식 마련, 세탁, 노인수발 등 별다른 기술과 능력이 필요 없는 활동도 포함한다.

시드니 레츠 운영자 케네디씨는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과 노인들이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레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소외된 전업주부나 노인들도 모두 가치 있는 노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체 회원 중 20% 가량은 정년 퇴직자들이다. 이들은 탁아는 물론, 전자제품 수리, 글쓰기 지도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구직자의 이력서나 각종 행정공문을 다듬어주고 있는 퍼거슨(67ㆍ여)씨는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비해 체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경험이나 능력면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지역사회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전업주부가 레츠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익혀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도 많다. 두 명의 자녀를 둔 멜라니(42ㆍ여)씨는 최근 2년 동안 레츠 회원 산드라씨에게 웹디자인을 배운 뒤 중소기업의 홈페이지 운영자로 취직했다.

멜라니씨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뒀던 여성이 나중에 재취업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문 기술을 갖춘 레츠 회원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시드니 레츠는 잔고 ‘0’를 지향한다. 주변 사람을 도와 오페라를 많이 저축하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케네디씨는 “레츠는 지역 주민들끼리 서로 돕자는 의미이지 일방적인 봉사단체가 아니다”면서 “잔고가 마이너스라고 해도 신용불량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지역 주민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표시하는 지표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개발원 홍승아 박사는 “레츠는 지역공동체 운동인 만큼 지역사회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라며 “우리나라는 품앗이 등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가족친화 공동체 형성에 레츠운동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호주)=글ㆍ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사진ㆍ홍인기기자 hongik@hk.co.kr

■ 동포 권기범씨가 말하는 ‘가족친화적 호주’

“요즘 호주의 관료들 사이에선 손자손녀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호주 시드니 외곽의 한인타운 스트라스필드에서 만난 권기범(44ㆍ사진) 지방의회 의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돌보는 것은 한국인의 독특한 특성”이라며 “호주 현지인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한국 이민자들의 육아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은 호주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권 의원은 “호주 정부는 이민정책 만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인구수준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해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2003년부터 ‘1명은 엄마를 위해, 1명을 아빠를 위해, 1명은 국가를 위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유아 1명 당 3,000 호주달러(한화 210만원)의 출산수당을 신설했고, 2008년에는 6,000달러를 지급할 계획이다.

가구별 소득수준을 따져 기저귀나 분유 값도 지원해 준다. 권 의원은 “정부 지원이 많다 보니 아기 1명을 낳으면 차를 사고, 2명을 낳으면 집을 산다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다”며 “실제 출산수당 신설 이후 출산율이 3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호주 정부는 가족친화적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열심이다.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첩경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들은 직장이 끝나면 철저히 가족 중심으로 생활한다.

엄마 아빠가 자녀들의 체육활동을 관람하거나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권 의원은 “심지어 공무원들이 수상과 얘기하다가도 자녀를 데리러 간다고 하면 실례가 아닐 정도로 가족 위주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이혼 다툼이 벌어진 경우 판사의 최대 관심사는 아동 복지이다. 부부가 이혼에 합의했더라도 18세 미만 자녀에 대한 구체적인 보육계획이 없으면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권 의원은 “가정법원 업무의 50% 이상이 아동복지 점검일 정도로 철저하다”고 설명했다.

안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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