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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국가의 위기와 자기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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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국가의 위기와 자기성찰

입력
2006.11.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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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어리석은 것 같다. 오랜만에 읽은 성경책 속에서 새삼 느꼈다. 구약 성경이 전하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징벌의 역사가 그렇다. 신은 피조물의 타락에 분노해 인간을 파멸시키려 하고, 겁먹은 인간들은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해 멸망만은 피하는 식의 역사다. 건망증이 심한 어리석은 인간과 인간에 실망한 창조주 사이에서 이런 저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끊임없이 반복된 것이다.

● 도쿄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의 울분

이 같은 구약 시대의 인간상은 왠지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소홀히 한 채 남에 대한 비난과 저주만을 일삼는, 편견과 오만과 무지로 가득찬 우리들의 모습에서 신도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된다.

비관적인 생각은 나 혼자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도쿄를 방문한 우리나라의 지도층 인사들 대부분은 울분을 토하며 우리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상황 판단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오만한 정치지도자와 무책임한 정부관료, 복지부동 공무원, 믿음을 상실한 법조인, 속물 언론인, 비도덕적인 기업인, 권력화한 노조지도자, 돈 밝히는 유권자, 학생을 떠난 교육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학부모 등 일그러진 사람들이 활개치는 싹수가 노란 나라이다. 정당한 권위를 가진 리더십의 부재로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 같은 위기의식이 만연해 있다.

일제침략과 동족상잔의 전쟁, 독재 치하 등 어두운 역사를 극복하고 기적처럼 무궁화꽃을 피웠던 의지와 기상은 병들어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아직 갈 길이 먼데도 사람들은 방심하고, 어리석어져 파국을 자초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갈등을 증폭하는 자극적인 포퓰리즘 정치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공동체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손상시키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국 땅에서 듣게 된 이들의 웅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상황 판단에는 훼손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진지한 자기성찰이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고 마는 풍조야말로 지금의 위기와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층 인사들 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증상은 우리들 모두가 앓고 있는 고약한 ‘시대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부끄러움 모르는 우리의 '시대병'

끝으로 최근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 현재 일본 천황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최종학력은 ‘대학 중퇴’이다. 황태자 시절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참가하느라 학교 수업을 빠졌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됐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려준 일본인 지인은 “몰랐어요?”라고 반문하며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라며 웃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하며, 반성하고,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도쿄ㆍ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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