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이라면 좋은 스코어를 내는 것 못지않게 남이 겪지 못한 환경에서의 라운드를 꿈꾼다. 지독한 골프광들이 잘 가꿔진 정규골프장을 마다하고 사막이나 대평원, 설원을 찾는 것은 이런 꿈을 좇아서다.
몽골의 대평원을 수개월간 골프를 하며 횡단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아이슬란드의 설원이나 모래 바람 부는 사막에서의 라운드를 즐기기도 한다. 사용하는 볼과 적용하는 룰은 다르지만 런던 도심에서도 골프경기가 가능한 것은 골프광들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 탓이다.
■ 이런 열정은 우주골프를 가능케 했다. 1971년 2월6일, 인류사상 두 번째로 달 표면에 내려앉은 아폴로 14호 선장 앨런 B. 셰퍼드가 착륙선에서 나와 처음 한 일은 티샷이었다. 월석 채취용 기구에 6번 아이언 헤드를 연결한 골프채로 볼 2개를 날렸다. 우주복 탓에 스윙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셰퍼드의 첫 티샷은 200야드에 그쳤다. 지구에서라면 35야드 거리다.
두 번째 티샷도 50야드밖에 날아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에드거 D. 마이클 부선장은 “아니 공을 친 겁니까, 달을 친 겁니까?”라고 웃었으나 휴스턴 우주센터를 향해서는 “공은 멋지게 또 멀리 날아가고 있습니다”고 중계했다.
■ 셰퍼드가 지구로 귀환하자 영국 왕립골프협회(R&A)에서 온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귀하의 위대한 업적과 무사귀환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골프 에티켓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골프 룰 매너에 관한 항목 6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벙커를 떠날 때 플레이어는 반드시 샷 자국을 깨끗이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되어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셰퍼드 선장이 달에서 사용한 6번 아이언은 지금도 미국 골프협회 박물관에 ‘달 클럽(Moon Club)’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돼 있다.
■ 두 번째 우주 골프쇼가 23일 오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펼쳐졌다. 러시아 우주비행사 미하일 튜린이 미국인 동료 마이클 로페즈 알레그리아의 도움으로 우주정거장 밖에서 지구를 향해 티샷을 날렸다. 골프채는 스칸듐이란 합금으로 만들었고 볼은 일반 볼의 15분의 1무게인 3g짜리였다.
전문가들은 이 볼이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을 160만~190만km 날아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정 티오프 시간을 못 지킨 데다 어드레스 때 동료가 발을 잡아주는 등 골프규칙을 어긴 것을 두고 R&A가 어떤 유감을 표할지 궁금하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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