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줄을 이은 올해, 같은 맥락의 굵직한 미술 전시회들이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달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루브르박물관 명화전, 이달 11일 시작한 덕수궁미술관의 장 뒤뷔페 회고전에 이어 성곡미술관의 알랭 플래셔 사진전, 국립현대미술관의 니키 드 생팔 회고전, 한ㆍ불 젊은 작가 10인의 가나아트센터 <카오스> 전이 나란히 겨울 문턱을 넘었다. 카오스>
성곡미술관의 알랭 플래셔(62) 사진전은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그의 사진은 거울과 영상 프로젝션을 사용한다. 고전적인 서양 명화를 거울에 비추고, 향수 어린 옛날 영화의 한 장면이나 죽은 이들의 얼굴을 건물 벽이나 땅바닥, 바닷가 모래밭이나 물결 위에 투사해서 찍은 것들이다.
그렇게 되비친 이미지가 실제 자연이나 실내 풍경과 만나 만들어내는 우아한 이미지가 고혹적이다. 프랑스 화가 앵그르의 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가 일반 주택의 거실 유리창에서 실내를 들여다보고, 멀리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이 보이는 로마 풍경 아래 흘러간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모습 등 그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이미지는 컴퓨터로 합성한 게 아니라 철저히 아날로그로 작업한 결과다. 그는 거울을 설치하고 영상을 쏘아서 빛이 만들어낸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이미 사라진 것, 지나간 기억, 미술관이나 캔버스에 갇힌 이미지를 현재로 불러내 두 번째 삶을 부여한다.
그가 지난 25년간 해온 작업들을 거의 망라한 이번 전시는 선풍기 날개에 영상을 비추거나, 사진 은판과 같은 은박 소재인 쿠킹 호일로 자신의 얼굴을 뜨고 다양한 이름을 붙여 또 다른 자아를 표현한 설치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내년 1월 21일까지. (02)737-7650
니키 드 생팔은 2002년 타계한 여성 조각가다. 화려한 색채의 뚱뚱한 여체 조각 <나나> 연작, 퐁피두센터 광장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 20여 년을 바쳐 완성한 토스카나의 <타로 공원>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작가다. 타로> 스트라빈스키> 나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 전반을 돌아보는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1950년대 말 초기작부터 2000년 작품까지 대표작 71점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나나> 연작의 밑거름이 된 초기작이 많이 포함돼 있어 그의 예술세계가 변모해온 과정을 살피기에 좋다. 내년 1월 21일까지. (02)2188-6000 나나>
프랑스 현대미술의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들은 가나아트센터의 <카오스> 전에서 만날 수 있다. 197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로 프랑스와 한국에서 5명씩 선정해 구성한 전시로 그림, 조각, 영상, 설치 등 여러 장르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카오스>
이들은 규제가 심하지 않은 환경에서 온갖 정보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성장한 세대답게 민첩한 감각과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주제와 양식이 뒤섞인 이번 전시의 혼란상은 젊은 작가다운 실험과 모색, 열정이 빚어내는 긍정적인 카오스다. 공통점을 찾자면 사적인 기억과 경험에 집중하거나 형태를 반복하고 변형하는 방식으로 기계와 육체, 외형과 내면, 현실과 가상, 서로 다른 시공간을 뒤섞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작가로는 이소정, 황은정, Sasa[44], 지용호, 이문주가, 프랑스 작가로는 알키스 부틀리스, 니콜라 다로, 레미 자케이, 니콜라 필라르, 제롬 종데가 참여하고 있다. 12월 10일까지. (02)720-102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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