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인생, 마침내 화려하게 꽃을 피우다.’
2006 K리그 챔피언결정 2차전이 열린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종료 휘슬이 울리며 수원을 2-1로 꺾고 우승이 확정되자 벤치에 있던 성남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달려나가며 환호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김학범(46) 감독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눈물에는 선수 시절 무명의 설움을 딛고 지도자로서 ‘제 2의 인생’을 꽃피운 인간 승리의 벅찬 감동이 서려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프로축구에서 ‘은행원 출신 감독’으로 이미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탔다. 91년말까지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한 김 감독은 은퇴 뒤 평범한 지점 대리로 근무했다. 차범근, 허정무 등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이 즐비한 K리그에서 실업팀의 무명 수비수 출신이 K리그 최다우승 보유의 ‘명문’ 성남 일화의 사령탑에 오른 자체가 입지전적인 스토리였다.
명지대 1년 후배인 최진한 전 대표팀 코치는 ‘김학범 성공 스토리’에 대해 “땀과 노력, 겸손한 인간성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최 코치는 “명지대 재학 시절 오른쪽 풀백으로 뛰면서 정신력과 투지, 근성이 누구보다 강했다.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해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면서 “윗사람과 동료들, 그리고 후배를 챙기는 사회성이 당시 운동만 했던 축구선수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그때부터 리더십이 남달랐던 것 같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김학범 감독은 지난 2005년부터 작고한 고(故) 차경복 감독의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전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리그에서는 9위까지 떨어진 어려운 상황. 김 감독은 그때부터 ‘팀 리빌딩’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한국 프로축구에서 보기 드문 일자 포백 수비를 완성시켰고 김두현을 영입해 대한민국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키워냈다. 김 감독 부임 이후 영입한 박진섭, 김두현, 우성용, 김용대 등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맹활약을 펼쳤고 치밀한 계산 하에 영입한 용병 공격수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 결과 2005 후기리그 1위를 달성할 시점에 이미 축구계에서는 “성남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는 K리그 최강”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마침내 올시즌 전기 1위와 함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승리, 2003년 이후 3년 만에 통산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성남 일화의 전성시대를 다시 한번 활짝 열었다.
김학범 감독은 K리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뒤 “작고하신 차경복 감독님께 우승을 바친다. 좋은 경기를 보여준 수원 차범근 감독과 열심히 뛰어준 수원 선수들, 그리고 성남 선수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수원=김기범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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