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장하준 교수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국가의 역할 / 장하준 지음ㆍ이종태 황해선 옮김 / 부키 발행, 496쪽, 1만6,000원
‘신자유주의’가 ‘세계화’라는 말과 짝을 짓더니 숫제 철 지난 유행어처럼 진부해진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누가 뭐라 하든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만 같다. 이미 세계는(그리고 우리도) 그 격랑 위에 몸과 영혼을 얹고 조류의 중심으로 빨려 들고 있다.
이 와중에, 신자유주의 세레나데가 세이렌의 유혹일 뿐이라며 지침 없이 물고 늘어지는 이가 있다. 그의 눈에 한국 경제는 물 가에 나앉은 아이, 아니 멋도 모른 채 허리 깊이의 물 속에 들어선 것 같은 모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다. 그의 저서 <국가의 역할> 이 번역 출간됐다. 국가의>
<세계화, 경제발전, 그리고 국가의 역할> 이라는 원제의 이 책은, 그의 역저 <사다리 걷어차기> 가 발표(2002)된 다음 해에 출간됐다. <사다리…> 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제도와 정책이, 먼저 과일을 따먹고는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위선 놀이임을 까발렸다면, 이 책은 그 제도와 정책들의 경제학적 토대이자 사상의 보루인 신자유주의를 직접 겨냥한다. 사다리…> 사다리> 세계화,>
신자유주의란, 한 마디로 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빠지라는 것이다.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고, 산업ㆍ무역정책을 포기하고, 공기업은 민영화하라는 것이다. IMF관리체제 이후, 한국 경제가 ‘개혁’의 이름으로 걸어왔고, 걷고 있는 바로 그 길이다.
“세계의 1인당 소득은 ‘바람직하지 않은 구시대’로 불리는 1960~80년 기간에도 3.1% 증가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던 1980~2000년에는 겨우 2%에 그쳤다. 개발도상국의 1인당 소득증가율도 3%(1960~1980)에서 1.5%(1980~2000년)로 떨어졌는데, 그나마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이 없었다면….”-서장에서
저자는 19세기 말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시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불황과 함께 시작된 국가개입주의 시대(케인즈주의, 뉴딜정책, 후생경제학, 사회주의 계획경제), 70년대 이후 통화주의의 득세와 사회주의 경제 후퇴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의 역습’ 등, 국가와 경제의 밀월-파경의 흐름을 고찰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맥락과 그 이론적 허약함, 현실적 무능함을 까발린다. 가령 신자유주의가 상정하는 ‘순수한 시장’이나 ‘가격의 객관성’이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논증한 뒤 “시장의 ‘탈정치화’는 여러 종류의 시장에서 자신들이 혐오하는 정치 행위, 예컨대 노동조합주의 등을 말살하기 위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시도일 뿐”이라고 논박한다. 또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두고 있는 ‘국가 불신’의 이론적 토대가 극히 허술하다는 점을 들며, 신자유주의는 “‘국가 반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사이비 과학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를 위해서는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은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선별적 산업ㆍ무역정책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공기업은 비효율의 온상이다… 등, 우리 시대 경제의 ‘정언명령’들을 저자는 우스꽝스러운 우화로 만들어버린다.
장 교수의 대안은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전제로 한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이다. 이미 박정희 시대 국가주도 경제개발의 효율성 못지않게 그 살인적인 상부구조(反민주)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의 이 결론이, 각론의 공감 여부를 떠나, 꺼림칙할 수 있다. 이 책은 또 기왕의 책들(<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경제> )의 논지와 고스란히 겹치고, 내용이 중복된 곳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하다. 기왕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논리의 정치화를 위해, 안 읽은 독자라면 이 신자유주의의 광풍 앞에 우리의 영혼이라도 건사하기 위해. 쾌도난마> 개혁의>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