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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日 연극 보며 사회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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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日 연극 보며 사회성을 보았다

입력
2006.11.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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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선방(禪房)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화두로 틀어쥐고 앉은뱅이를 자처하면서, 제4의 벽 너머 현실을 직시하는 사회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연극에서는 무대와 객석 사이, 그 형형한 눈빛의 공모가 사라지고 있다.

23일 목요일 2002년 창립 이래 세 번째로 열린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서 선보인 일본 극작가 사카테 요지의 작품 ‘다락방’은 한국연극에서 약화한 연극의 ‘사회성’을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 (성균관대 경영관 소극장)

연극은 낭독공연으로 진행됐다. 9명의 배우들이 무려 53명의 역할을 맡아 ‘읽어주었다’.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 연극 ‘다락방’은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를 소재로 오직 2인용 텐트만한 세트 하나에 기대어 축소지향으로 일본 사회를 묘파해가는 작품이다. 서장과 종장을 제외한 21개의 장면들이 최소한으로 축소된 공간 속에서 정교하게 흘러간다.

일본 공연 당시 사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이 연극의 공간적 발상은 매우 흥미롭다. 누군가로부터 제공된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통신판매용 박스가 어느 날 유행하게 되고, 한 청년이 이 박스 안에서 자살을 한다. 청년의 형은 박스를 최초로 만든 자를 찾기 위해 추적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이 공간의 역사적 기원과 인류학적 시원, 그리고 일본인의 무의식과 판타지를 대면한다. ‘박스’는 은둔형 외톨이를 가두는 공간을 넘어 에도 시대의 자객이 잠복근무 중인 천장이 되고, 사자(死者)가 누운 관, 산장, 엘리베이터, 전장 속 참호, 천측(天測)을 위한 플라네타리움, 우주 정류장, 벽화가 그려진 원시시대의 동굴 등으로 시공간이 증폭돼 간다.

은둔형 인간의 출현은 알려졌다시피 핵가족화로 인한 단절감,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도달한 역설적인 고립과 불통,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대한 압박감, 개인과 지역, 공동체간에 유리된 연대감 등등 사회심리학적 원인은 다양하다. 여기에 작가는 안으로 덧붙여 묻는다. 이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부추기는 진정한 박스 공급자는 누구인가? 지난 10월 국제연극평론가협회 총회에서 일본의 ‘새로운 연극성과 비평’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노다 마나부’의 글에서 일단의 답을 발견한다. 고이즈미 정권 이래 우경화해가는 일본 현실을 반영함으로써 오늘날 일본인의 병든 몸, 유약한 몸, 갇힌 몸을 보여주는 연극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낭독공연이었기에 신체의 제한성에서 돌출되는 희극성과 아이러니 효과, 공간적 제한과 집요한 실험성은 짐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연극의 정치학이 곧 ‘인식’의 정치학임을 보여준 이번 자리는 한국연극에 분발을 촉구하는 하나의 자극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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